엄마는 사계절 내내 맨발로 다닌다. 겨울에도 양말 신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언제 이 더위가 끝날까 싶었는데 처서 지났다고 밤으로는 공기가 선선해졌지요. 8월에 띄우는 연재에는 두 글 모두 우연히도 해 진 후의 풍경이 선명합니다. 뜨거워진 발로 땅을 밟는 장면과 양푼 안에 삶은 밤을 꾹꾹 으깨는 장면을 오가며,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도착하게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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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사계절 내내 맨발로 다닌다. 겨울에도 양말 신은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의 발은 햇빛과 흙과 굳은살로 누런빛이 돈다. 그 발로 여름에는 슬리퍼를 겨울에는 운동화를 구겨 신고, 집에서 시장을 통과해 몇십 년째 일하는 가게까지 딱 5분 거리를 걷는다. 사람의 일평생이 그 5분 거리에 다 있는 것처럼. 느리고 무거운 걸음으로.
시장에 있는 가게가 엄마의 일터가 된 것은 아빠의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옷, 액세서리, 화장품을 팔았고, 말과 시간을 팔아서 가족을 부양하며 아빠가 잃은 것을 하나씩 되찾아왔다. 엄마가 식구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낼 때마다, 회복할 때마다 나는 엄마가 가장으로 사는 시간 동안 무엇을 잃었는지 궁금했다. 양말이었을까? 어느 날, 엄마의 망가진 발을 보면서 엄마가 잃은 것이 양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름에 즐겨 신었던 발목까지 오는 단정하고 하얀 양말, 겨울에 포근하게 발을 감싸던 털양말,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배려 같은 것. 사람의 신체 중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견디며 가장 낮은 곳에 있어야 하는 발은 좀처럼 타인에게 위로받기 힘든 부위다. 고된 하루 끝에 이불 속에서 말없이 피로를 감내하고, 다음 날 다시 일어나 걷는 엄마의 맨발이 나는 꼭 엄마와 닮은 것 같다.
“양말을 왜 안 신어?”
언젠가 길을 걷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몰라. 하루를 정신없이 살다 보면 발이 너무 뜨거워. 그래서 그런 것 같아.”
엄마는 무심하게 답했다.
엄마의 발과 닮은 발을 본 적이 있다. 프랑스 중부지방, 오베르뉴에 살 때였다. 중앙 산지를 차지하는 그 고장의 또 다른 이름은 화산의 땅. 어느 늦여름에 친구들과 해 질 무렵, 화산이 잠든 산에 올라 저녁 피크닉을 즐겼다. 헤드랜턴으로 서로의 잔을 비추면서 와인을 마시고, 야간 트래킹을 즐기는 여행자들의 텐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한참 신나게 놀던 그때, 무용수인 한 친구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축축한 풀과 검은 돌을 밟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발을 다칠 수 있다는 만류에도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안 다쳐. 나는 춤추는 사람이라 발이 나무토막처럼 단단해. 너희들도 벗어봐. 함몰과 융기를 반복한 땅의 기운을 오롯이 느끼려면 맨발이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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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덩컨(1915-1923년경) photo by Arnold Genthe
헤드랜턴의 불빛을 따라 움직이는 그 두 발을 보며 엄마를 떠올렸던 것은 굳은살이나 망가진 발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그 화산의 땅을 제일 먼저 마중하러 나간 것이 그의 발이었기 때문이다. 실체 없는 생각을 만드는 머리나, 숨어서 뛰는 심장, 한없이 가벼운 입술이 아니라, 그의 발이 먼저 세계를 두드리고, 만지고, 느끼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춤이 엄마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 무척 닮았다고 느꼈다. 화산의 땅을 뜨겁게 마중하는 춤처럼 엄마는 매일 생을 열정적으로 맞이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신나는 음악에 맞춰 공중에 뜬 것처럼 격렬하게 춤을 추던 그가 다시 신중하게 땅을 밟았다. 그의 발은 마치 고막이 있는 것처럼 땅에 밀착하여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맨발로 서면 내가 땅과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져. 풀이나 돌이나 벌레처럼 땅의 일부가 된 것 같아.”
그는 그렇게 말했고, 춤이라기보다 영혼의 의식 같았던 그의 움직임이 내 기억 속에 있던 책 한 권을 다시 펼치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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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무엇을 증명하거나 제시하기 위하여 추는 것이 아니다. 춤은 등의 아름다운 선을 자랑하고 팔다리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보여 주겠다는 의지가 강해질수록 춤은 보이지 않고 춤추는 자의 몸만 보인다. 보이는 것은 춤이 아니라 ‘내가 여기에 있으니 나를 보아주세요’ 하고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춤은 보는 이를 괴롭힐 뿐이다. 그것은 춤이 아니다. (…) 이제 나의 춤은 완전한 ‘자기 없음’이 되어야 한다. 관객을 의식해서도 안 된다. 자아를 의식해도 안 된다. 오직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만이 몸에 실려 저 영원의 율동을 남게 해야 한다.
_홍신자, 〈자유를 위한 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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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엄마를 단번에 매료시켰던 사람, 홍신자의 말이다. 내가 그의 춤을 처음으로 제대로 본 것은 약 8년 전, 파리의 한국 문화원에서였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전에 춤이 아닌 글로 그를 알고 있었다. 자유로운 춤꾼이자 세계를 떠도는 구도자, 홍신자.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학교와 입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내게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뉴욕에서 무용을 하다가 인도로 떠나 수행하는 삶을 살았던 그를, 그의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나와 엄마는 오랫동안 동경했다. 우리는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을 읽으며 각자의 자유를 꿈꿨고, 그때 우리에게 자유란 ‘벗어남’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엄마와 나는 벗어나길 원했다. 엄마는 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삶으로부터, 나는 나를 보호하고 제약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것이 자유인 줄 알았다. 내게 익숙한 곳에서 멀리 떨어져서도 다시 새로운 감옥을 만들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내가 홍신자의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더는 자유를 찾지 않으면서였다. 그저 하루를 사는 일이 전부였을 무렵, 화산의 땅에서 엄마의 발을 떠올리게 하는 친구의 발을 보며 나는 구도자, 홍신자를 다시 생각했다. 홍신자는 한국을, 뉴욕을, 인도를 떠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땅과 하나가 된 어느 무명 무용수의 발을 보며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자유롭기 위해 떠나야 하는 것은 장소나 사람이 아니라 ‘나’, 나의 에고라는 것을, 모든 구도는 ‘나’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버리기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아마도 그 자유로운 발들은 자신을 버리기 위해 그토록 먼 길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다시 인도로, 극장에서 산으로, 집에서 가게로. 사는 것은 평생 발이 닳도록 걷는 일. 누군가는 나를 비우고 오직 춤만을 남기기 위해, 그저 자연의 일부가 되기 위해, 삶을 살기 위해 모든 걸음을 바치고, 나는 그런 걸음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어도 발바닥이 뜨거워진다. 나도 그렇게 발이 닳도록 걷다 보면 내 안의 깊은 곳에 흐르는 용암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안 지겨워?”
엄마의 퇴근길을 함께 걸으며 물었다.
“여기가 내 인생의 순례길이야. 5분 순례길. 처음에는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그런 마음이었는데 이 길을 지나다니면서 다 없어졌어. 그냥 최선을 다해 사는 거야.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일이니.” 엄마는 뜨거운 발로 한결 가볍게 나아가며 말했다.
요즘 나는 엄마의 5분 순례길을 걸으며 아직도 굳건한 나의 에고에 대해 생각한다. 글을 쓰고 싶은 나, 쓰고 싶지 않은 나, 엄마의 딸인 나, 누구의 무엇이 되고 싶지 않은 나. 무엇이 되고 싶은 나, 아무것도 아닌 나. 나는 그 많은 나를 언제 비워낼 수 있을까…. 어쩌면 내게도 발바닥을 뜨겁게 달구는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 시간이 용암처럼 터지고 굳고 다시 흐르기를 반복하고 나면, 나는 없고 글과 삶이 남아, 수많은 생生이 만든 풍경 속의 작은 점이 될 수 있을까. 엄마가 찍은 점을 잇는 선이 될 수 있을까. 그 선은 또 어느 점으로 이어질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지금은 그냥 걸을 뿐이다. 구도자가 아닌 여행자의 마음으로. 여행자는 길을 묻는 사람이고, 홍신자는 사랑으로 가득한 자의 손가락은 언제나 정확한 곳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러니 이 무지한 걸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내가 길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내 앞에 있기 때문이다. 생을 뜨겁게 만나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걸음을 내딛는 사람, 엄마. 맨발의 엄마가 내 앞에서 걷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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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장 앞을 서성이고, 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우고 이야기를 꿈꿨다. 산문집 <창문 너머 어렴풋이>, <몽카페>, <열다섯 번의 낮>과 <열다섯 번의 밤>을 썼고, 아니 에르노의 <세월>, <진정한 장소>를 비롯한 여러 책을 옮겼다.@malletshi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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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엄마는 자주 밤을 삶았다. 이 작업은 주로 해가 진 후 방 안에서 이루어졌다. 삶은 밤의 두꺼운 겉껍질을 까는 건 나와 언니의 몫이었다. 푹 삶은 밤의 겉껍질은 두껍긴 해도 전혀 딱딱하지 않아, 갈라져 있는 뾰족한 끝을 잡고 엄마가 미리 내어둔 칼집 방향을 따라 아래로 죽 당기면 쉽게 벗겨졌다. 벗긴 밤을 엄마 앞에 놓인 나무 도마 위에 쌓아 놓으면 엄마는 작은 칼로 속껍질을 벗겨 양푼에 담았다. 양푼 안에 밤이 수북하게 모이면 숟가락을 세워 밤을 써는 것처럼 부순 후 꾹꾹 눌러 으깨는 작업이 이어진다. 엄마가 밤을 부수고 으깨는 동안 언니와 나는 바닥에 떨어진 껍질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한곳으로 모으며 엄마를 돕는 시늉을 했다. 노란 플라스틱 뚜껑을 돌려 꿀통을 열고 끝이 눌어붙은 빨간 플라스틱 국자로 꿀을 퍼서 으깬 밤 위로 붓던 엄마. 국자에서 매끄럽게 떨어지던 꿀이 방울방울이 되면 검지로 국자 밑을 슥 훑어 밤 위에 묻히던 엄마. 찐득해진 밤을 국자 뒤로 다독인 후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으며 묘한 미소를 짓던 엄마의 얼굴이 기억난다. 그리고 양푼에 남아 있는 밤을 퍼먹던 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화장실이 주인집 마당에 있던 단층 주택의 방 한 칸을 빌려 살던 유년의 기억은 중간중간이 삭제되고 희미해져 ‘가난한 시절’로 뭉뚱그려졌다. 하지만 꿀에 잰 밤처럼 선명한 기억 몇 조각은, 마구 뒤섞인 유년 시절의 퍼즐을 맞춰주는 그런 조각은 예상치 않은 순간에 불현듯 찾아온다. 그러면 편의점에서 그때의 밤과는 맛도 모양도 전혀 다른, 방부제 향인지 무엇인지 모를 인공적인 향마저 나는 밤을 사서 먹다가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혼자 밤을 먹으며 우는 건 완전 사연 많은 사람 같아 보일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사이다를 사서 벌컥벌컥 마신다. 어떤 기억은 그렇게 목이 메게 찾아오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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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밤을 받고 내가 밤을 좋아한다고 말했던가. 와아 밤이에요? 저 밤 좋아해요, 라고 말한 것 같기도 하다. 단골손님이 건네신 봉지 안에는 손가락 한마디만 한 작은 밤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얼른 집에 가서 삶고 으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음식을 만들어야겠다고.
그날 밤, 삶은 밤에 이제는 먹지 않는 꿀 대신 아가베 시럽을 잔뜩 넣어 슥슥 비비고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식탁에 앉아 비빈 통에 남아 있는 밤을 긁어 먹는데 편의점에 서서 밤을 먹었을 때처럼 눈물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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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라는 것이 원래 집에 들이면 계속 생각이 나게 마련인 건지, 밤을 처음 사본 나는 틈만 나면 밤을 생각했다. 글을 쓰다가도, 냉장고 문을 열다가도 불쑥불쑥 떠올라서 베란다에 나가 밤송이들이 잘 있나 확인했다. 나간 김에 창가에 붙어 서서 바람을 맞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는 동안 가을을 곱씹었다. 내가 밤을 생각할 때마다 가을도 쫓아와서 내 곁을 기웃거렸다. 실수로 산 밤 한 바구니 때문에 나는 온종일 밤과 가을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이 된 것이 기뻤다. 어처구니없게도 잘 살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_문이영, 〈우울이라 쓰지 않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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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작은 방에서의 다른 기억들도 데리고 온다. 가장 최근에 데려온 기억은 방석이었다. 밤의 속껍질을 까는 엄마는 노란 장판의 방바닥 위에 그대로 앉아 있고, 방석은 언니와 나의 엉덩이 아래에만 깔려 있다. 예전 앨범 속에서 그 방석을 본 적이 있다. 언니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진이었는데 방석은 케이크 아래, 다리가 접히는 동그란 밥상 위에 깔려 있었다. 방석이 테이블보도 되던 그런 시절이었구나. 케이크 아래 무언가를 깔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다 실패한다. 밤과 함께 도착한 기억을 눈으로 확인하려 본가에 가 사진을 찾았더니 엄마는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나 쳐다보기도 싫어 예전 사진을 다 버렸다고 했다. 나는 내 기억이기도 한 사진들을 상의 없이 버린 엄마에게 던질 원망의 말을 찾다가 문득 그때의 엄마가 서른 살쯤이었다는 것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 밤에 엄마 얼굴에 어렸던 미소는 아마도 어린 딸들을 위한 며칠간의 간식이 준비되었기에 나온 표정이었을 것이다. 미소가 묘하게 슬퍼 보였던 건 그런 잠시의 다정함으로 포장하기에는 가난한 생활의 무게가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었으리라. 버거운 밤은 그 시절의 사진을 볼 때마다 엄마를 찾아왔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밤과 엄마의 밤은 많이 달랐을 것이기에, 사진에 담긴 엄마의 기억과 내 기억 또한 다를 것이기에 사진을 버린 엄마에게 나는 한마디 말도 할 수 없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 밤과 함께 도착한 내가 잃어버렸던 퍼즐 한 조각은 마음속 앨범에 조용히 담긴다.
첫 밤 이후 밤은 계속 도착하고 있다. 어느 날은 생산자의 이름으로 직배송된 밤이 상자째 도착한다. 저희 집 거 사면서 같이 주문했어요. 맛이 있어야 할 텐데요. 문자도 이어서 도착한다. 계속 주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처음에 밤을 좋아한다고 말했었나 보다. 이번에는 알이 좀 작습니다, 이번 밤은 안 단 것 같아요, 라는 설명을 달고 올 때도 있다. 각기 다른 맛과 모양의 밤이 무심하게 책방 앞에 툭, 놓인다.
그 손님은 내게 무엇을 주고 계신지 모를 것이다. 밤과 밤이 함께 오는 줄 모르고 그저 밤을 주었다 생각하시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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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31일 가정식 책방 ‘리브레리아Q’를 열었다.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지금은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딸과 나눈 책 편지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를 썼고, 그림책 《구름의 나날》을 옮겼다._리브레리아Q @libreria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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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봉이의 일기 ] 이것저것 🐱 𐩒 ‘대봉이의 친구’ 이벤트에 참여해 준 우리 귀여운 고냉이 친구들 보고 가실게요 :) *냥구 ‘공기 뽀뽀를 한다’ @kkam1705 *엘남매 ‘니빨로 쫍젼!’ @joyeuxnoelmiel *뚜이 ’인간들이 뭔가 먹기 시작하면 나는 똥이 마렵다’ @a_small_goodthing & @slowisdom *슈숙 ’실물을 아직 한 번도 못 본 인간도 많다’ @danidaeunpark *빵식이 ‘인간들허고 놀아주기 버쳐마씸’ (입양 축하해요!) @chu_panther *줄리 ’쌀쌀맞다고 누가 그래?’ @skywalker20150127 *강모카 ‘냐앍! 확마씨!’ @sewmewmeow 𐩒 ‘작업책방 씀’의 8월 두 번째 책방로그 ‘선물하기 좋은,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책’에 [대봉이의 일기]를 소개해 주셨어요. 미화리 작가님과 윤혜은 작가님이 각각 꼽아주신 좋았던 장면 확인해 보셔요🙂 ✏️ <이주의 밑줄> “소봉이 자리였던 캣타워의 제일 꼭대기에는 아무도 올라가지 않는다. 대봉이는 나에게 불만이 있을 때 화장실 아닌 곳에 오줌을 싸는데 보리가 가르친 것이 틀림없다. 나는 어느 자리에 가도 흔한 비닐포장지를 꼭 치우는 사람이 되었다. 대봉이가 씹어 삼키기 때문이다. 언젠가 대봉이가 떠난 후에도 그렇게 비닐봉지를 접어 정리하며 대봉이를 떠올릴 것이다. 관계의 거리를 한 뼘도 안 되게 좁혀 가족이 되어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가족이 떠나도 앉아 있던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내 마음은 그 빈자리 그대로 품이 넓어진다.” _신현아, <대봉이의 일기> 에필로그 中 𐩒 ‘대봉이 티셔츠’ 많은 관심 감사합니다. 제작 완료되는 대로 꼼꼼히 검수해 발송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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