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냄새와 첫눈의 촉감이 선명한 두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는 또 어떤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줄까요. “내가 걸어온 걸음과는 매우 다를 것이 분명한, 땅의 변화를 느끼며 천천히 걷는 걸음이 궁금해졌어요. 누군가가 책을 통해 나누어 준 경험이 제게 자꾸 용기를 줘요.” _정한샘
“여성으로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문을 닫고 싶지 않다면 설명이 될까. … 살아보지 않은 여성의 삶을 타자를 통해 만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이해하고 싶다.” _신유진
내 이야기의 동사와 주어를 확장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다른 존재와 시선을 바꾸는- 위엄 있는 글 두 편을 전합니다. 빵 냄새와 첫눈의 촉감이 선명한 두 이야기가 여러분에게는 또 어떤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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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한샘
서울에 나올 일이 많지는 않은데요, 기꺼이 게으른 발걸음을 옮기는 때가 있다면 오랜 친구를 만나 마음에 있는 짐을 모두 털어놓는 날입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고요. 지금 저는 친구가 자신을 기다리라고 지정해 준, 친구가 사는 동네에 있는 빵집에 앉아 작은 종이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제 손에는 세 번째 읽는 11월의 책이 들려 있고요.)
이 빵집은 매일 8시에 그날 새벽에 준비한 빵을 진열해 두고 문을 연대요. 8시에 모든 준비를 마치려면 몇 시에 나와서 하루치의 빵을 준비하시는 걸까요. 제빵사는 해가 뜨기도 전에 새카만 공기를 밀어내며 출근하겠지요. 오븐에 열이 오르는 동안 가루를 덩어리로 만들며 제빵사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저는 몸을 움직이는 노동에 집중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던데 빵을 만드는 사람들도 그럴까요. 가루를 모아 부드럽고 말랑거리는 큰 덩어리로, 그 덩어리를 나누어 우리가 알고 있는 빵의 모양으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는 손길을 생각해 봅니다. 아주 이른 새벽, 매일 같은 시간에 누군가의 아침을 위한 일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편지를 쓰며 갓 구워진 빵 향을 맡고 있자니, 따뜻한 바게트 하나 먹으면 좋겠다 싶네요. 빵은 꼭 자신이 사준다며 커피만 먹고 있으라 하기에 커피만 시켜두고 앉아 있거든요. 기온이 많이 떨어져 이제는 무조건 따뜻한 커피를 찾게 되는군요. 오늘은 약간 쌀쌀하지만 하늘이 맑고 볕도 있어 걷기에는 참 좋은 날인 듯해요. 사실 저는 걷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과거에 지겹도록 걸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수년의 시간 동안 걸으며 만난 상황 중에는 떠올리면 여전히 움츠러들고 기분이 가라앉는 일들이 있거든요.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말이에요. 게다가 한쪽 근육만 쓰며 적절한 운동을 병행하지 않았기에 서서히 휘어진 척추와, 삼십 대가 되기 직전 두 달간 누워 있어야 했던 병원 생활로 망가진 허리는 저를 걷기 싫어하는 사람에서 점차 걷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조금씩 걸으면 치료가 되었겠으나 노력할 조금의 마음도 없었던 저입니다. 그런데 한 책에서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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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창이 얇은 신발을 신고, 계절에 따라 달아오르고 식는 땅을 발바닥으로 먼저 느꼈다. _문이영, 《우울이라 쓰지 않고》, 오후의 소묘,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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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르는 땅의 열기와 식어 차가워지는 서늘함을 발바닥으로 먼저 느끼는 기분을 저도 느껴보고 싶어졌어요. 나의 가장 아래에 있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살아있는 땅의 온도, 계절에 따라 바뀌는 그 온도의 변화를 느껴보고 싶다고 말이죠. 이제껏 계절의 변화를 냄새와 바람을 통해 느껴왔는데 발바닥으로 느끼는 변화는 어떻게 다를까. 내가 걸어온 걸음과는 매우 다를 것이 분명한, 땅의 변화를 느끼며 천천히 걷는 걸음이 궁금해졌어요. 누군가가 책을 통해 나누어 준 경험이 제게 자꾸 용기를 줘요. 그때와 지금은 다르니 걸어보라고, 너의 기억이 새로운 기억으로 채워질 거라고, 그러니 다만 나가서 걸어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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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편지에는 11월의 책 이야기는 안 하고 제 이야기만 실컷 했네요. 어떤 책은 많은 말을 얹기가 힘들어서요. 우리는 얼마나 쉽게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지, 얼마나 쉽게 다름에 대해 말하고 표현하는지, 나쁜 의도가 아니었다는 말은 왜 핑계가 될 수 없는지, 모든 돌고래가 유리벽으로 막힌 공간이 아닌, 바다에서 헤엄치는 세상이 어서 와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듯 이어지는 11월의 책이었습니다. 함께 읽는 분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다시 읽었어요.
혼자 읽던 책을 같이 읽어보자고 권하는 일은 많은 이를 스쳐 지나는 것이 싫어 걷는 것조차 꺼리던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손을 내미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어서 제 손 잡아요.
서점원Q 드림
*월간비밀Q로 2022년 11월의 비밀책과 함께 띄운 편지를 다듬었습니다.
**박주현, 《빛 뒤에 선 아이》, 우리나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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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31일 가정식 책방 ‘리브레리아Q’를 열었다.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지금은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딸과 나눈 책 편지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를 썼고, 그림책 《구름의 나날》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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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유진
눈이 왔다. 이른 아침에 하얗게 눈 덮인 동네를 산책하다가 새끼를 낳은 개를 봤다. 빈집에서 어미 개가 새끼 강아지들을 품고 있었다. 유기견 센터에 신고는 하지 않았고(보호소에 데려다줬던 강아지가 안락사 대상이 된 이후로 절대 신고하지 않는다), 대신 어미 개가 누운 곳에 반려견이 먹던 사료를 놓아뒀다. 어미 개는 새끼들을 두고 혼자 나와 밥을 먹었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자리를 떴다.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보니 그 개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배웅인 듯했다. 오전에 엄마를 만나서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했더니 엄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건과 담요, 물그릇과 사료 그릇을 챙겼다. “뭐 하고 있어, 가자!” 엄마는 새끼를 낳은 동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엄마는 늘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엄마를 차에 태우면서 물었다. “내가 운전해도 괜찮겠어?” 비장한 표정의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 내린 날에 십 년째 초보인 내 차를 타는 게 겁 많은 엄마에게는 목숨을 거는 일이었지만, 돌봐야 할 대상이 나타나면 엄마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 나와 동생을 키울 때도 그랬다. 엄마를 태우고 천천히 달리는 동안 내가 봤던 어미 개의 표정을 이야기했다. 그 개에게는 어떤 위엄이 있었고, 엄마는 그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에 막 출산한 여자의 고통과 두려움과 환희가 몇 초 동안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 표정을 관찰했다. 나는 출산을 텍스트처럼 바라본다. 관찰하고, 곱씹고, 단어의 위치를 뒤바꿔 보듯 의미를 뒤집고 되짚어 본다. 그것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열망이나 아이를 갖지 못했다는 절망과는 다르다. 여성으로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문을 닫고 싶지 않다면 설명이 될까. 혼자 사는 여성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살아보지 않은 여성의 삶을 타자를 통해 만나고,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이해하고 싶다. 나는 그것이 내가 가진 여성성을 완전하게 살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의 진입로가 공사 때문에 막혔다. 엄마는 운전에 서툰 나를 안심시키려고 ‘천천히 가면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우리는 둘 다 잘 모르는 길로 차를 돌려야 하는 두려움에, 나는 핸들을 엄마는 안전벨트를 꽉 움켜줬다. 우리는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엉킨 샛길을 기어가듯 달렸고, 둘 다 서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썼다. 집 앞 골목이 보이자 그제야 엄마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겁 많은 사람이 어떻게 엄마로 사는지 몰라.” 내 말에 엄마가 웃었다. “엄마가 되는 건 곰이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는 것처럼 조금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어.” 엄마는 내 말에 더 크게 웃었다. 어릴 때는 사람의 몸에서 다른 생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는데(여전히 그 일은 내게 비현실적이다), 이제는 출산과 함께 여성의 몸에서 본능적으로 자라는 이타심이 훨씬 더 신비하게 느껴진다. 데리언 니 그리파는 “여성의 몸은 스스로에게서 무언가를 훔치는 행위를 통해 또 다른 몸에 봉사한다.”*라고 말했고, 내게는 그 말이 위대하고 대단하나 나를 겁먹게 하는 신화처럼 들린다. 내가 그런 것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알면 엄마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게 뭐가 무서워? 백 번이고 주지. 다 줄 수 있지.” “뭘 줄 건데?” 나는 물을 테고, “시간, 돈, 체력, 마음, 엄마가 가진 것 전부!” 엄마는 답할 것이다. 어머니들은 그렇게 가진 것을 다 비워내며 신화적 존재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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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 앞에 차를 두고, 엄마가 준비한 것들을 들고 마을을 걸었다. 눈으로 뒤덮인 논밭이 포근해 보였고, 햇볕도 제법 따뜻했다. 빈집 앞에서 엄마는 “세상에, 세상에”를 외치며 개를 끌어안을 기세로 달려갔다. 나는 몇 번이나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내게 어미는 본능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알아챈다고 했다. 엄마가 밥과 물로 어미 개를 불러낸 사이에 나는 담요와 수건을 깔았다. 가죽과 뼈만 남은 어미 개가 지친 눈빛으로 물을 허겁지겁 마시는 동안 새끼들은 좁은 구석으로 숨었다. “어미는 잘 먹어야 해. 새끼들을 생각해서라도 먹어야지. 네가 잘 지내야 새끼들도 잘 지낸단다.” 엄마는 그 개에게 말했다. “엄마는 채워야 해. 채워야 줄 수 있어.” 엄마는 내게 말했다. “모성은 다 비우는 건 줄 알았지.” “너 전혜린이 쓴 책을 읽고도 몰라? 전혜린이 딸을 낳고 자기 이야기 아니라 딸 이야기를 쓰잖아. 그래도 그 글은 여전히 전혜린이야. 딸 낳은 전혜린의 글.” 엄마가 말했다.
집에 돌아와 엄마가 내 집의 마당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동안 전혜린의 책을 찾아 펼쳤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의 〈자라나는 숲〉은 전혜린이 딸, 정화를 낳고 쓴 글을 담은 챕터다. 그 글들은 대부분 ‘오늘 정화가, 오늘 정화는’으로 시작된다. 자기 고백적 글을 쓰는 작가의 주어가 일인칭에서 삼인칭으로 바뀌는 것은 스타일의 변화를 넘어서 세계의 확장과 ‘나’ 안에 타인을 포함하는 더 넓은 사랑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전혜린의 쓸쓸한 문체를 좋아하지만, 바지를 혐오하고 치마를 좋아하는 정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정화가 아니라 그런 정화를 바라보는 전혜린을 볼 수 있었다. 놀아달라는 아이의 말에 갈등하면서도 ‘자기의 생이 텅 빈’ 어머니의 삶을 용납할 수 없는, ‘가장 풍부한 개인적 생활을 가진 여자만이 아이로부터 가장 적은 요구를 한다’고 말하는 전혜린은 출산과 함께 어느새 한 인간의 깊은 고독과 동시에 한 여성이 직업과 양육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회가 마련해야 하는 설비와 노력과 연구를 요구할 줄 아는,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전혜린의 이런 변모는 어쩌면 데리언 니 그리파가 말하는 또 다른 몸에 봉사하는, 즉 이타성을 통한 성장이 아닐까. 그렇다면 출산의 경험이 없는 여성의 이타성은 무엇을 통해 발현되어야 할까? 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가진 여성성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의 답이 혈연 또는 종을 넘어선 관계에서 주고받는 돌봄에 있으리라 믿는다. 여성이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돌봄을 통해 자신의 모성을 끊임없이 고찰하고 통찰하듯이, 내가 속한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세계를 돌보며 그 사랑을 고찰하고 통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돌봄은 나를 성장시키고, 내 이야기의 주어를 확장시킨다. 주어를 확장하고 싶다.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도. 어미 개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면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떠올렸다. 매일 아침 산책하는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 아침 산책하는 인간을 바라보는 어미 개의 이야기. 나는 그 이야기가 어미 개가 마땅히 받아야 할 돌봄을 요구하고 또 받는 것으로 끝나면 좋겠다. 위엄 있는 눈빛으로 “당신은 나를 돌봐야 합니다. 나는 생명을 돌보고 있으니까요. 생명을 돌보는 일은 존엄하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으로. 눈이 다시 한두 송이 내린다. 창 너머로 엄마가 나를 바라본다. 오랜 시간 생명을 돌본 존재의 위엄 있는 눈빛으로.
*데리언 니 그리파, 《목구멍 속의 유령》, 을유문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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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책장 앞을 서성이고, 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우고 이야기를 꿈꿨다. 산문집 <창문 너머 어렴풋이>, <몽카페>, <열다섯 번의 낮>과 <열다섯 번의 밤>을 썼고, 아니 에르노의 <세월>, <진정한 장소>를 비롯한 여러 책을 옮겼다.@malletshin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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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할머니의 팡도르] 낭독 다과회 X 강릉 댄싱터틀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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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맛이군요.” 빵 속에는 온갖 풍미가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생의 맛이었어요. —
<할머니의 팡도르>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 강릉의 명소(!) 댄싱터틀에서 팡도르를 나눠 먹으며 그림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댄싱터틀은 오래된 폐목욕탕을 업사이클링한 재생 문화공간으로, ‘Dance your own way’가 모토인 카페입니다. 늘 자신의 집을 지고 다니는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가고 성장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해요. 무엇보다 두 모녀(정사장님, 슈매니저님😺)가 정성으로 구워내는 디저트가 일품이고요. <할머니의 팡도르>와도 무척 잘 어울리겠지요? 따듯한 생의 맛을 나눠요. 낭독 다과회 날부터 한 달간 ‘오후의 소묘 팝업 전시’도 진행됩니다. 한겨울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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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12월 13일(수) 저녁 7시 • 장소: 댄싱터틀(강원 강릉시 노암길 42) •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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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일하니 좋아요. 공간도 예쁜데 혼자만 있으니 더 좋네용. 다음번에는 일거리 말고 읽을거리 가져와서 시간 보내고 싶어요. 집에 고양이가 많아 집중할 수 없어서 나왔는데 고양이 그림이 많은 것도 좋아요. 방해하지 않는 이쁜이들 ㅎ 또 올게요. 언젠간 ‘작가의 방’에 어울리게 작가가 되면 좋겠어요.” _벌써 두 번이나 이용해 주신 1호 작가님 후기. 감사합니다 :-)
✍ 이용 방법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주차 불가로 공용주차장 이용)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신청하기: 네이버 예약 (월 단위로 일정을 오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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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섬 위의 주먹] 2023 뉴욕타임스&뉴욕공공도서관 선정 올해의 그림책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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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소묘 첫 그림책 <섬 위의 주먹>이 올해 영미권에서 ‘At the Drop of a Cat’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고, <뉴욕타임스> 2023 올해의 그림책에 이름을 올렸어요. 기쁜 소식과 함께 심사평을 전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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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끔찍한 전쟁을 피해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루이 할아버지는 글을 읽거나 쓸 수 없기에 자신이 아는 언어인 새의 노래, 자연의 아름다움을 비롯해 삶의 다양한 기술(정원 가꾸기, 그림 그리기, 요리)을 통해 손자와 소통합니다. 비올레타 로피스의 무성하고 싱그러우며 감정으로 풍부한 그림은 두 사람이 공유하는 관심사와 그들을 갈라놓는 차이점을 모두 묘사해 냅니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가까워짐에 따라 로피스는 점차 무성한 초목을 걷어내고 서로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독자들에게 우리 모두가 찾고 있는 것, 즉 순수한 인간 관계를 발견하게 해줍니다.” —<뉴욕타임스>, 크리스토퍼 라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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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의 편지가 오는 날에는 빨리 밤이 되길 기다립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찬찬히 편지를 읽는 이 시간을 참 아껴요. 늘 감사합니다. _나경
하루 끝에 고요히 마주하는 귀한 마음- 감사합니다. 두 작가님들께도 분명 전해지리라 믿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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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비가 오는 가을밤에 답장을 씁니다. 애써 물들인 단풍들이 속절없이 달아날 것만 같아 조바심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모든 말은 일종의 공동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보르헤스) 요즘 읽고 있는 <명예, 부, 권력에 관한 사색> -무미건조한 세계에서 작가와 독자가 살아남으려면-이라는 부제가 붙은 탕누어의 책에 인용된 문장입니다. (…) 그 문장을 읽는 중 한샘 작가님의 연재를 읽다 보니 비슷한 지점이 보이더라고요. 서점에서 책을 안심하고 골라가는 데에는 아주 큰 전제가 따르는데 그것은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존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웃고 우는 마음이 비슷해야 한다는 문장이었어요. 작가가 무언가를 쓰는 마음과, 서점에서 누군가를 위해 깊고 진지하게 책을 골라주는 서점원님의 마음은 아마도 유실되지 않기를 바라는 공동의 경험과 기억들 때문일 것이고 그 효과는 개인을 넘어 커다란 장기적 순환을 위한 바람이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이런 마음들이 모여 누군가는 읽고 누군가는 쓰며 나누는 교집합의 외연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조용히 새겨보았습니다. _inyoung0408
가을밤의 답장에 겨울밤에 또 답장을 씁니다. 그사이 나무들은 잎을 떨구었고 첫눈까지 내렸네요. 읽고 계신 책과 한샘 작가님의 글을 포개며 공동의 경험으로 나눠주신 마음- 감사합니다. 이렇게 교집합의 외연을 넓혀가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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