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숨, 하찮은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가장 뜨거운 이야기를, 해의 끝자락에 전합니다. 누군가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테고, 누군가는 고개를 돌릴지 모를 질문. “보이지 않는 삶이 행복할까요? 그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요?” 행복과 보람이라는 단어가 너무 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저는 “어둠을 담당한다는 점이 근사하게 느껴졌다”라고 말하는 이에게, “사는 게 별것이 아닌데, 당연하지. 그래도 나는 별거 아닌 것이 별것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이야기가 좋더라”라고 말하는 이에게 고개를 크게 끄덕이게 됩니다. 크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무언가의 뒤에서, 그 가장 끝자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밥과 숨, 하찮은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는 가장 뜨거운 이야기를, 해의 끝자락에 전합니다. |
|
|
글: 신유진
겨울에는 옛날 집을 생각한다. 겨울을 나는 일이 혹독한 주택이었는데, 그곳을 이야기할 때면 자꾸 따뜻한 것들만 말하게 된다. 식탁 위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던 음식, 등을 대고 누우면 기분이 좋았던 온돌바닥, 티브이 앞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과일을 먹던 어른들, 두껍고 포근한 이불. 어디까지 사실인지 어디서부터 조작된 기억인지 헷갈린다. 나는 과거를 글로 옮기며 각색하니까. 각색의 방법은 간단하다. 있었던 일,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거나 아름답거나 의미 있다고 믿는 한 단면만을 옮기는 것이다. 그 단면을 제외하면 무엇이 남을까. 쓰는 삶을 살면서 내 안에서 자라는 질문이 있다. 내가 쓰지 않은 것, 보지 않은 것, 말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그것들을 꺼내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하찮은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중요하지 않고, 딱히 아름답지 않고, 큰 의미도 없는 것부터. 거기에 무엇이, 누가 있는지를 바라보면 가려진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진짜 의미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하찮은 것은 무엇인가? 여기, 내가 잘 아는 하찮은 이야기가 있다. 밥 이야기다. 스무 해 정도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사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그놈의 밥, 지겨운 밥”이었다. 엄마는 하루에 여섯 번씩 밥상을 차렸던 것 같다. 새벽에는 출근하는 사람의 밥을 챙기고 아침에는 등교하는 아이들, 시부모의 밥, 집에 있는 사람의 점심과 퇴근하고 돌아온 사람의 저녁. 엄마는 아침에는 점심을 점심에는 저녁을, 저녁에는 다음 날 아침을 걱정하면서 말했다. “사람이 참 하찮은 것에 매달려 살아.”
하찮은 밥은 매일 엄마를 따라다녔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마의 꿈은 밥에서 해방된 삶을 사는 것이었다. 엄마는 밥을 먹을 때도 정말 하찮게 먹었다. 서서 대충 때우거나 잔반 처리가 엄마의 식사였다. 이 문장을 쓰는 순간, 내가 놓쳤던 장면 하나가 막 떠올랐다. 일곱 식구가 사는데 의자가 네 개뿐이었던 우리 집 식탁. 거기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던 음식 앞에 앉은 사람들 중에 엄마는 없었다. 엄마를 빼도 의자가 모자란 날에는 자연스레 내가 식탁을 떠났다. 그때마다 나는 밥과 국을 나르고 부엌을 어슬렁거리며 할 일이 없는지 살폈다. 누구도 가르쳐준 적 없었으나 내가 혼자 배운 것이었다. 눈치 빠른 내가 식탁에서 일어나 집안 여자들이 하던 일을 흉내 낼 때면 엄마는 말했다. “여자들은 어쩔 수 없지.” ‘여자들은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시작하는 엄마의 가르침 중에는 월경 전에 단것이나 밀가루를 많이 먹지 않기, 공중화장실을 쓸 때 휴지를 깔고 앉기, 가슴이 파인 티셔츠나 짧은 하의처럼 ‘천박’하게 보이는 옷을 입지 않기 등이 있었다. 나는 대체로 그 가르침을 하찮게 여겼으나 그것들은 금세 내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한 번도 말한 적 없었지만, 사실 나는 그 하찮은 것들을 많이 생각한다. 단것이나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만 살찌는 게 싫고, 그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더 싫었다. ‘천박’하지 않은 고상한 옷을 찾으려고 쇼핑몰을 뒤지면서도 ‘천박’하다는 말에 몸서리를 치고, 더러운 화장실이 싫어서 밖에 나가서는 물도 잘 안 마시면서 까다롭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털털한 척했다. 엄마에게 배운 그 모든 하찮은 것들과 내가 넘어서고 싶은 어떤 한계가 충돌할 때마다 나는 점점 더 복잡한 인간이 되었다. 여자라서 어쩔 수 없이 배운 것들, 느끼는 것들, 조심해야 할 것들을 단번에 뛰어넘고 싶으면서도 누구보다 그 굴레에 갇혀 살았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나를 지배하는 이 하찮은 것들을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가 여성 작가의 신변잡기를 다룬 글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명징한 언어, 빛나는 사유이지 밥이나 월경, 옷, 화장실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학교에서, 책 속에서 배운 모든 것들은 내게 가져본 적 없는 언어로, 품은 적 없는 사유를 말해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조바심을 내며 그것들을 오래 기다렸다. 어째서 나의 삶은 이토록 하찮은 것들로 채워져 크고 의미 있는 것들을 말할 수 없을까. 그렇게 자신에게 물으면 먼 기억 속에서 찾아오는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은 어쩔 수 없지.” 그런가? 따뜻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생각한다. 내가 등을 대고 누웠던 그 방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 나와 동생의 방이었고, 정작 엄마의 방은 서늘했던 사실이 이제야 생각났다. 아, 그러고 보면 나는 그 건넌방을 부모님의 방이 아닌 엄마의 방이라고 불렀다. 그 공간을 부지런히 쓸고 닦고 또 자신의 것들로 채운 것은 엄마였으니까. 엄마는 그곳에서 주로 밥과 싸웠다. 밥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밥 아닌 무언가를 하기 위해. 엄마는 루이제 린저를 읽다가 책장을 넘기며 머리에 손을 짚고 말했다. “아, 여자들은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이어지는 말. “여자들은 그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자기 안에 중요한 뭔가를 만들지. 한 번은 반드시 그걸 바깥으로 꺼내야 하고.” 여자들이 반드시 꺼내봐야 하는 그것은 무엇일까. 밥 이야기일까, 밥과 싸우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밥이 없는 이야기일까. 나는 그게 궁금했다. 저마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온돌은 금세 잠들어 버려서 싫다고, 오롯이 주어진 그 밤이 그냥 사라지는 게 아깝다던 엄마는 서늘한 방에서 무언가를 읽고 썼다. 작은 스탠드의 노란 불빛과 밥이 아닌 다른 것에 허기진 여자가 있던 그 방, 그곳은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의 겨울과 동떨어진, 가장 황량하고 또 가장 뜨거웠던 곳이었다. 어쩌다 누군가 엄마에게 무슨 책을 읽고 있냐고 물으면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별거 아닌 소설책, 별거 아닌 시집, 별거 아닌 에세이. 엄마는 그런 것을 읽었다. 언젠가 집에 놀러 온 친척들 앞에서 별거 아니라며 책을 감추는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왜 맨날 별거 아니래?” 엄마는 말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이야기는 별거 아니야. 사는 게 별것이 아닌데, 당연하지. 그래도 나는 별거 아닌 것이 별것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이야기가 좋더라. 별거 아닌 걸 말할 줄 아는 용기도.” 별거 아닌 것들의 별것을 향한 몸부림. 그 말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별거 아닌 것을 말할 줄 아는 용기도. 엄마의 그 말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을 테니까.
|
|
|
프랜시스 호지킨스, 〈정물: 달걀, 토마토, 버섯〉, 1929. |
|
|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까. 정확히는 무엇을 먹일까. 어느덧 엄마가 했던 고민을 내가 한다. 매일 마주해야 하는 모든 게 그렇듯이 밥은 내게도 하찮고 지겨운 일이지만, 나는 그것을 빼놓고 내 삶을 이야기할 수 없음을 안다. 나의 현실이니까. 그 현실을 글로 써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존재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하찮고 지겨운 일을 반복하며 별거 아닌 것들에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면서 별것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그게 나의 삶이자 또 나의 글이기도 하다. 이건 여자라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주어진 그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우리를 말하게 하고, 나아가게 한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여자들은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할 때, 그 어쩔 수 없음이 엄마를 어디까지 나아가게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당신의 어쩔 수 없음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나와 다른 혹은 나와 닮은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가? 우리의 삶에서 하찮은 것부터 이야기해 보자. 너무 위대한 사유나 커다란 지혜를 찾아 멀리 헤매지 말고, 별거 아닌 그 소중한 것부터 시작해 보자. 당신과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이야기는 분명 거기 있을 테니까. |
|
|
엄마의 책장 앞을 서성이고, 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우고 이야기를 꿈꿨다. 산문집 <창문 너머 어렴풋이>, <몽카페>, <열다섯 번의 낮>과 <열다섯 번의 밤>을 썼고, 아니 에르노의 <세월>, <진정한 장소>를 비롯한 여러 책을 옮겼다.@malletshin_ |
|
|
글: 정한샘
어두운 공간을 목소리가 채운다. 단어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꽂혀 와 숨을 쉴 타이밍을 자꾸 놓친다. 이어지는 첼로와 기타의 선율에 참았던 숨을 뱉는다. 낭독과 클래식 음악이 함께 하는 이 시간을 위해 책방 문을 닫자마자 고속도로를 달렸다. 낭독이 이루어질 책은 포르투갈의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인 티아구 호드리게스가 쓴 희곡집 《소프루》이고 그에 맞는 음악을 첼로와 클래식 기타가 연주해 줄 것이었다. 《소프루》는 무대 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와 동선을 알려주는 ‘프롬프터’를 주인공으로 이끌어낸 희곡집이다. ‘소프루’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로 ‘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불어넣어져야만 살 수 있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 그것이 목소리와 악기를 통해 내게 전달되고 있다. 검은 박스 안에 존재했던 이의 마음이 목소리를 타고 나오니, 마치 노래 같기도 하다.
퇴근 차량이 몰리는 시간과 겹쳤기에 시작 시간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뒤쪽에 남아 있는 자리에 앉자 숨 돌릴 틈도 없이 낭독자와 연주자들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입장했다. 그리고 바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객석과 그들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워서 앞줄에 앉은 이들은 그들의 숨소리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긴장감을 온몸으로, 몸에 남아 있는 기억으로 느꼈다.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건 아홉 살 때였다. 엄마가 내린 결정에 따라 방과 후 수업으로 바이올린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보다 두 해 앞서 바이올린반에 들어갔던 언니가 영어회화반으로 옮기게 되었으니 언니가 사용하던 바이올린을 내가 써야만 한다고 했다. 나는 소설가나 무용가가 되고 싶었는데 엄마는 책을 읽는 일도, 춤을 추는 일도 나중에 하라고 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한 바이올린이지만 받아들이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연습을 하지 않아도 다른 아이들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개인교습을 받는 아이들을 제치고 상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재능이라 말했다. 그냥 두기에 아깝다고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가정의 경제 상황에 따라 배우는 공간과 형태도 바뀌기 시작했다. 방과 후 교실에서 동네 학원으로, 그다음에는 집으로 찾아오는 선생님으로, 그리고 열다섯 살부터는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개인지도를 받게 되었다. 엄마의 열정이 강해진 그때쯤 내게도 흥미가 조금 생겨서 어쩌면 앞으로 바이올린 연주자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독과 연주가 거의 마무리될 때쯤, 첼로 연주자는 프롬프터라는 직업에 빗대어 질문한다.
무대 아래의 삶, 보이지 않는 삶이 행복할까요? 그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제일 뒷줄에 앉아 그에게는 한 덩이 어둠으로만 보일 공간에서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보이지 않기를 택하는 사람, 무대 아래의 삶이 어쩌면 더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
|
|
무대 위가 너무 무서웠다. 연주자 머리 위로 동그랗게 떨어지는 핀 조명 안으로 들어가 설 때마다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쓰러지는 상상을 했다. 나의 떨림이 느껴지지 않도록 활을 현 위에 올리고 자연스럽게 첫 음을 내는 그 순간까지가 나에게는 지옥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다른 시간이 흘렀다. 무대에서 내려오며 가장 많이 한 말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 였다. 조명에 녹아버리지 않으려 두 다리에 힘을 줘야 하는 시간이 싫었고, 바이올린이 싫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교수님의 소개로 오페라 공연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오페라 음악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자리는 마치 프롬프터가 무대 위에서 몸을 숨긴 박스처럼 무대 아래, 배우들의 발아래에 있었다. 구멍처럼 뚫린 어두운 공간으로 통하는 계단을 밟으며 마음이 편해졌다. 내리쬐는 조명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내게 허락된 조명은 오로지 나의 보면대만을 비추는 작은 스탠드뿐이었다. 빛이 없으므로 주인공이 아니었고, 관객들 눈에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연주가 쉬어갈 때는 무대 위를 곁눈질하며 저들의 연기가 틀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니 처음으로 연주가 재미있었다. 이후 교수님이 뮤지컬이나 오페라 세션이 필요하다 하시면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이곳이라면 어쩌면 연주를 계속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질문을 던진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책을 골라 책방을 채우는 서점원의 일이 꼭 무대 아래의 일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검은 박스 안에 몸을 숨긴 프롬프터 같다는 생각도. 무대 아래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이 있어야만 공연이 완성되었지만, 빛은 무대 위 배우만을 비추고 있기에 관객은 그 존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채 끝나버린 공연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빛이 있는 곳에서 어둠을 담당한다는 점이 근사하게 느껴졌다. 그게 좋았기에 반주자들에게 공을 돌리는 시간이 오히려 조금 민망했다. 책방에서 빛을 받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책이다. 책은 책방에서 유일한 주인공이 되어, 있어야만 하는 곳에 놓여야 한다. 그 적절한 자리를 찾는 것이 나의 일이다. 어느 날 문득 그 존재를 알아차리고 이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며 놀라는 이에게 공감하며 박수 쳐주는 일도, 오래 자리를 지킨 책의 먼지를 털어주는 일도 마찬가지다. 책을 발견한 이는 책을 쓴 이를 떠올릴 것이고, 세심한 사람이라면 어쩌면 책을 만든 이들까지도 생각해 줄지 모른다. 책을 진열하고 파는 이는 아마도 책이라는 주인공 뒤에서 가장 끝자리에 존재하지 않을까.
책방에 있는 그 어떤 책에도 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어요, 라고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제는 그 손길에 내 숨도 닿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 이곳이 책방의 기능을 다하는 날이 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다. 손님이 계속 줄어들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 텐데 나는 과연 이 공간을 채운 책들을 다 치워버릴 수 있을까. 책이 빠져나간 공간에 텅 빈 숨만 남게 되는 것을 상상하면 조금 슬퍼진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좋으니, 아무도 내 노동을 몰라줘도 좋으니 책이 빛나는 공간이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 사람들이 이 책들이 알아서 자리를 잡고 놓여 있다고 생각해도 좋으니 말이다.
소프루. 나의 숨, 나의 호흡이 차 있는 책방. 또다시 연말을 맞이한 4년 차 서점원의 마음은 이렇게나 비장하다. |
|
|
2020년 7월 31일 가정식 책방 ‘리브레리아Q’를 열었다. 이탈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지금은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딸과 나눈 책 편지 《세상의 질문 앞에 우리는 마주 앉아》를 썼고, 그림책 《구름의 나날》을 옮겼다.
|
|
|
❨ _[작가의 방] 1월 예약 오픈_ ❩
“창작 에너지가 무한히 샘솟는 신기한 공간이네요! 덕택에 두 주나 밀려 있었던 온라인 글방 과제를 뚝딱! 마치고 갑니다.” _작가님 후기. 감사합니다 :-) |
|
|
✍ 이용 방법
-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신청하기: 네이버 예약 (월 단위로 일정을 오픈합니다)
|
|
|
❨ _[오후의 소묘 특별전 ‘그림책 깊이 들여다보기’ X 강릉 댄싱터틀_ ❩
강릉의 댄싱터틀에서 연말연시에 함께 읽기 좋은 그림책 10권을 선별해 소개합니다. 그림책에서 무엇을 보면 좋을지, 편집자의 시선으로 디테일하게 포착한 그림책의 장면들을 만나보세요. 사진을 감상한 후에 그림책을 펼치면 그림과 이야기가 새롭게 보일 거예요. 그리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시길 바라요.
전시와 팝업 스토어는 1월 중순까지 이어집니다. 즐겁게 찾아주세요 :) |
|
|
🐢 장소: 댄싱터틀(강원 강릉시 노암길 42)
|
|
|
매달 레터를 보면서도 ‘답장 한 번 써볼까? 에이... 중언부언 할 것만 같아.’를 반복했어요. 그런데 11월의 레터를 보면서 탁, 소리를 내며(물론 제 머릿속에서요) 읽던 흐름이 멈췄어요. “나는 출산을 텍스트처럼 바라본다.”는 신유진 작가님의 글이었어요. 아, 내가 찾던 것이, 여태 풀지 못한 것이 이것이었구나... 저 역시 엄마의 딸이지만 출산하지 않는 기혼여성으로 살기로 했고, 그러면서 좀 난감해지는 일이 잦았어요. 여성으로 사는 일의 다면적 속성이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럴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감정이 ‘난감함’이라면, 내면으로부터는 ‘자기중심성’이 너무 완강해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럴 때 마주한 문장이라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제 안에서 엉켜 있던 물음표의 실타래를 톡, 하고 간명하게 끊어준 것 같아요. 역시, 레터 구독하기를 잘했어요. _오타
레터 속 문장이 물음표의 실타래를 간명하게 끊어주었다니- 이보다 기쁜 답장이 있을까요. 담아주신 마음에 힘입어 여성으로 사는 일, 그 풀리지 않는 무엇들에 관해 계속해서 이야기 전하겠습니다. 언제든 답장 편히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 |
|
|
달력을 반 장만 남겨둔 12월입니다. 올 한 해는 정말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지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보았지만 답을 찾지 못한 채 새해를 마주할 것 같아요. 정신없이 지나간 한 해에도 꼭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요 그것 중 하나는 당연 소묘 레터입니다. 답장을 보내고 달력을 넘기면서부터 기다림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어요. 뭔가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랄까요. 삶의 커다란 동력이 되었답니다. 두 작가님의 다정하고도 깊은 마음들을 읽으며 하루를 한 주를 한 달을 그리고 이제 일 년을 잘 보내게 될 것 같아요. 소묘 레터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모두 행복한 연말 그리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바라요! Merry Christmas!!! _inyoung0408
달마다 빠짐없이 보내준 인영 님 답장 덕분에 저희 소묘팀도 에너지 크게 얻었습니다. 레터의 커다란 동력이 되었어요, 정말. 하나하나 기억하고 싶은 것들 가득 손꼽는, 따듯한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도 다정히 만나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