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듯 짧은 명절 잘 보내셨나요? 저는 쉬면 병이 나는 사람인가 봐요..(아님) 나흘을 꼬박 앓고 가을이 당도한 지금에야 조금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편지는 쉬어가려고 했는데… 전하고 싶은 소식이 가득이지 뭐예요!
오후의 소묘가 애정하는 ‘작업책방씀’이 9월로 4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래서 추석 연휴가 시작된 첫날엔 우리 미화리 & 윤혜은 작가님이 꾸리시는 작업책방씀에 다녀왔어요.(인스타로 스케치를 올리긴 했지만 편지에서는 좀 더 촘촘하게 담아 보냅니다.)
4년간 진행했던 작가의 책상과 행사들, 책방로그에서 추천한 책들, 두 분이 함께 쓴 책방일기, 씀을 사랑하는 여러 작가님들의 축전, 그리고 틈틈이 담아둔 씀의 애틋한 장면들까지. 하나하나 마주하며 예상치 못하게 너무나 뭉클해져서 초큼 당황했답니다.. 기쁘게 우리 작가님들 축하하러 갔던 건데 왜 제가 이렇게 울컥해..🥹
그간 오후의 소묘가 씀과 같이 또 따로(?) 쌓아온 것들이 적지 않더라고요. 일단 상반기에 두 작가님의 책이 나란히 나왔고, <매일을 쌓는 마음>과 <엔딩까지 천천히> 모두 ‘작가의 책상’ 전시를 진행했죠. 두 책의 첫 북토크도 씀에서 열렸어요. 서로의 작업을 처음부터 오래 지켜봐 온 만큼 두 분이 나눈 이야기는 어느 북토크보다 깊고 다정했지요. 그뿐인가요. ‘마음의 지도’ 시리즈의 첫 책인 문이영 작가님의 <우울이라 쓰지 않고>의 첫 북토크도 씀에서 가졌는걸요. ‘마음의 지도’ 시리즈 다음 타자인 고수리 작가님(과 미화리 작가님도 또 있는데..)의 <작은 마음>도, 가을이 가기 전에 선보일 신유진 작가님의 에세이도 씀에서 진행되었던 ‘작가의 책상’ 전시를 보며 계약까지 성사되었던 것이었어요. 편집자의 작업(플러팅)이 이루어지는 곳, ‘작업’책방 씀.. 후후.
이 모든 행사들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1차로 뭉클했고, 2차는 사진 앨범으로부터..! 제가 담았던 장면도 두 컷 자리하고 있더라고요. 거기에 달린 작가님들의 코멘트를 보고 또 뭉클. 여기서 끝이 아니겠죠. 혜은 작가님의 <매일을 쌓는 마음>에는 ‘책방일기’도 수록되어 있는데, 두 작가님이 함께 쓴 책방일기의 실물이 책상에 놓여 있었어요. 어쩐지 훔쳐보는 기분이 들어(물론 그게 일기 읽는 맛인데?) 진득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빽빽한 글줄 사이에서 “웃음과 눈물이 범벅된” 이야기들과 우정은 도드라지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느 시기에 중단되어 있던데, 이 기회로 다시 쓰시면 좋겠다 싶었지요.
씀에 함께한 여러 작가님들의 축전을 보는 재미(보다는 감동)도 컸어요. 그중 ‘일기떨기’의 소진 님 편지 중 제 마음과 꼭 포개진 문장을 옮겨봅니다.
베를린에서 만나 친구, 동료, 반려가 된 미화와 혜은에게서 삶을 잘 쓰고 꾸리는 법에 대해 배웁니다. … 엉망으로 열심히 또 즐겁게 사는 방법과 기운이 모여 있는 곳. 앞으로도 늘 독자와 우리와 친구로 남아주세요. :)💛
씀을 애정하는 이라면, 또 씀을 꾸려가는 두 작가님들의 책을 읽은 독자라면(<매일을 쌓는 마음>과 <엔딩까지 천천히>에도 잘 담겨 있죠 :-), 모두가 공감할 거예요. 하지만 이 전시는 ‘한 번도 찾은 적 없는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4년간 열어온 행사와 참여한 작가님들을 보며 나의 취향과 관심사에 얼마나 닿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겠고요. 잘 맞는다면 앞으로 씀이 열어갈 것들을 기대하며 그 미래에 함께할 수도 있겠죠? 작업책방씀의 유튜브 채널 [책방로그]에서 소개한 책들과 테마의 목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건 또 얼마나 알찬지! 색다른 큐레이션의 장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어쩌면 책방을 꾸리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작부터 하나하나 만들어간 역사 또한 사진 앨범과 서점일기에 빼곡하고요.
무엇보다 제게는 이 전시가 ‘작업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답이자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씀의 작업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고 감탄하면서, 오후의 소묘가 꾸려온 5년을 펼쳐보인다면 어떤 모양일까 생각해 보게 됐거든요. 쌓아온 시간들이 마냥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건 아니라는 희망과, 앞으로 꾸려갈 작업들은 어떤 모양이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품으며 새 기운을 얻기도 했습니다. 저마다 그런 질문과 기운 품는 시간 될 거라 믿어요.
우리가 함께한 시간들이 저 멀리 달아난 것이 아니라 각자의 곁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시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망연히 흐르고 있지만,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충분히 느낄 수 있게끔 증거를 남긴다. _윤혜은, <매일을 쌓는 마음>
제게 ‘잘’ 산다는 건 나를 만나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는 삶이에요. 가족도, 친구도, 그리고 나도. 나를 만나 다행이었던 삶. 좀 더 욕심을 낸다면 나랑 만난 게 득을 본 것 같은 삶. 사는 동안 그런 기억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_이미화, <엔딩까지 천천히>
꾸준함과 우정의 증거로 가득한 우리의 씀! 씀을 만나 다행이에요. 득을 잔뜩 본 것 같아요! 소진 님의 축전 문구처럼 ‘삶을 잘 쓰고 꾸리는 법, 엉망으로 열심히 또 즐겁게 사는 방법’이 넘쳐흐르는 망원동의 방공호, 작업책방씀의 전시는 10월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오는 28일 토요일에는 가을 플리마켓도 열린다고 하니 망원동 나들이해 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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