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더위가 성큼 다녀가더니 이른 장마가 시작되었네요. 강렬한 더위가 성큼 다녀가더니 이른 장마가 시작되었네요. 빗속에서도 서울국제도서전 열기는 뜨거웠지요. 오후의 소묘는 참가도 구경도 없이 조용히 지나쳤지만 즐거운 소식들을 접하며 멀리서 응원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공교롭게도 레터의 제목이 마치 도서전에 끼고 싶었다고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언뜻 드는군요. 그것은 전혀 아니고… '이치코의 코스묘스'로 돌아온 이치코 실장이 육묘를 보면서 읊조리는 말이랍니다!
여섯 고양이와 함께 지내다 보면, 그 숫자가 얼마나 풍성한 관계망을 만드는지 새삼 깨닫게 돼요. 단순한 덧셈은 통하지 않고, 관계는 복리의 마법이나 거듭제곱의 무지막지함보다 더 복잡해집니다.(하지만 거기에 사람을 낄 수 없다는… 작은 진실이 후후.) 숫자 놀이(?)로 보는, 도서관 옆집 여섯 고양이들 사이의 질서와 혼돈, 우정과 위계, 그 역동적인 복잡계의 풍경을 전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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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옆집에는 여섯 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
현실의 카오스적 복작거림과 난리스러움에 비해 참으로 건조한 문장이네요. 숫자 여섯은 큰 수가 아닙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금방이잖아요. 하지만 고양이가 여섯이란 표현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고양이 하나, 고양이 둘, 고양이 셋… 이런 선형적인 느낌이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무언가 숫자의 비밀이 숨겨진 듯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1, 3, 2, 5, 4의 순서로 숫자를 세는 것도 아니고 1+1은 명백히 2임을 알고 있지만 왠지 1 다음에 올 숫자가 2가 아닌 것 같고 1+3은 4보다 클 것 같은 , 고양이 여섯으로 이루어진 세계에는 그러한 혼란스러운 감각이 있습니다.
자본Capital이란 단어가 사용되기 이전부터 돈은 가만히 있는 법을 몰랐습니다. 제 몸집을 불릴 줄 아는 마치 생물 같은 존재였죠. 역사의 기록이 희미한 시대에도 벌써 이자의 개념은 존재했고, 화폐가 발명된 이후로 이자는 돈을 증식하는 데 필요한 가장 핵심적이고 표준적인 절차가 되었습니다. 복리의 마법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원금에 붙은 이자에 다시 이자를 적용하면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속도로 돈이 불어나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10만 원을 연 10%의 이자로 20년간 굴렸을 때, 단리일 경우는 1년에 1만 원씩 생기는 20만 원의 이자를 더해 총 30만 원이 됩니다. 하지만 복리라면 20년 후에 총 672,750원이 되는데 단리와의 차이를 고려하면 372,750원은 순전히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생긴 돈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원금 이자의 1.8배가 넘으니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복리로 돈을 투자하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워런 버핏이라는 사람이 복리 효과를 장기적으로 활용해 큰 부를 축적했다고 알려져 있죠. 워런 버핏, 저도 압니다. 유명한 사람이니 이름은 들어봤죠. 근데 당장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책 살 돈도 쪼들리는데 복리는 무슨 복리.. 제가 그를 보며 놀라는 지점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한 개인이 그렇게 많은 부를 소유해도 되는가.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그것이 과연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유익한 일인가? 갑자기 경제정의를 외치게 되어 뻘쭘합니다만 아무튼 복리라는 개념이 대단하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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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를 여덟 번 이상 접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한 번 접을 때마다 종이가 겹치면서 두께가 두 배씩 되니까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금세 물리적으로 접을 수 없는 높이에 도달하게 되며 그 한계가 일곱 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덟 번 이상 접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접히면서 두꺼워지는 종이의 높이를 상쇄할(접을 수 있을) 만큼의 넓이를 확보해주면 됩니다.(물론 그 두께를 접을 힘도 있어야겠지요!) 기네스북에 등재된 종이접기 기록은 열두 번입니다. 와,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보다 다섯 번을 더 접었네요! 그렇다면 나는 열세 번을 시도해볼까? 라고 생각하셨다면, 어.. 그러지 마세요.
2002년에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종이를 접는 데 필요한 두께와 폭의 상관관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방정식을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열두 번 접기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이때 사용된 종이는 화장지처럼 아주 얇고 긴 종이였으며 그 길이는 무려 1,219미터(4,000피트)였다고 합니다. 이론상으로 42회 정도 접으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 먼 높이가 된다고 합니다. 종이를 꼴랑 마흔두 번을 접었을 뿐인데 갑자기 달이 튀어나올 줄이야!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은 바로 2^n(2의 거듭제곱)이라는 수식입니다. n의 숫자만큼 2를 계속 곱해주는 단순한 방식이지만 n이 조금만 증가해도 결괏값이 통제할 수 없이 커집니다. 종이를 접어서 달까지 닿을 수 있는 이유도 2^42가 4,398,046,511,104(4조 3천9백8십억..) 이렇게나 무식하게 큰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거듭제곱 앞에서는 복리의 마법도 그저 귀여울(?) 따름이네요.
고양이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합니다. 임신기간과 발정주기 모두 짧은 데다 평균적으로 4~6마리가 태어나기 때문에 적절한 환경만 주어진다면 폭발적으로 개체수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2가 아니라 4나 6의 거듭제곱이 되기 때문에 이론적 계산으로만 본다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죠. 하지만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거듭제곱의 무지막지함에도 대항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마법이 있으니까요. 제아무리 큰 숫자라고 해도 0을 곱하면 0이 되는 법, 우리에겐 땅콩 제거술, 아니 중성화수술이라는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보호소에서 입양하든 길고양이를 구조하든 간에 기울기 1의 일차함수로 고양이의 수가 증가합니다. 하나 다음엔 둘, 1 더하기 1은 2, 의심할 여지 없는 산수의 규칙이 적용됩니다. 적어도 둘까지는..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셋부터는 상황이 좀 달라집니다. 하나, 둘, 셋에 더해 뭔가 더 있는 것 같고 2+1이 3보다 큰 것처럼 느껴집니다. 넷, 다섯, 여섯일 때는 그 차이가 점점 더 커져가고요. 보통 고양이가 셋 이상일 때 다묘가정이라고 부르는 게 괜한 표현이 아닙니다. '다묘'라는 말에는 고양이가 많다는 뜻 외에도 산수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계의 의미가 더해져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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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묘가정이 복잡계가 되는 이유는 고양이끼리 맺는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양이가 하나일 때는 관계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둘부터 관계가 생성되는데 그 수는 1입니다. A 고양이와 B 고양이 사이의 관계만 있죠. 고양이 A, B, C 셋이 있다면 두 고양이끼리 각각 관계 맺음이 발생하기 때문에 관계의 수가 3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란 그런 존재들이 아닙니다. 셋 전부를 연결하는 새로운 관계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둘이 한편이 되어 나머지 하나와 경쟁하거나 적대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때 한 편이 되는 둘 사이의 관계는 그 둘만 있을 때 맺는 관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결과적으로 고양이가 셋일 때 가능한 관계의 수는 A-B, B-C, C-A, A-B-C, A&B-C, A-B&C, A&C-B 이렇게 일곱 개가 됩니다. 둘일 때 비해 세 배 이상 복잡해집니다. 만약 고양이가 여섯이라면? 계산하기조차 부담스럽네요. 이쯤에서 질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고양이가 사람하고도 관계를 맺을 텐데 그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니 의아해하실 만도 하죠. 하지만 위의 도식이 사람과 고양이 사이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수가 아무리 많아져도 고양이한테는 0을 곱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정도로 무의미한 존재라서 관계라고 부를 만큼의 긴장감이 생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집사나 캔따개 등으로 낮춰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도서관옆집 육묘의 실제 사례를 한번 살펴보실까요.
─ 1:5
여섯 고양이를 1:5로 나눈다고 하면 1의 자리에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5와 대치하면서 1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으면 관계가 성립할 수 없으므로 도서관옆집에서 1:5의 긴장감을 만들 수 있는 고양이는 삼삼이와 치코뿐입니다. 자존감으로 따지자면 삼삼이가 탑 오브 탑입니다. 다섯 동생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함께 생활하는 고양이의 수가 몇이라도 상관없이 마치 자기 혼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반려하는 인간의 존재는 인정합니다. 삼삼이에게 도서관옆집은 (❪자신+인간❫ … 떨거지 동생들)의 공간입니다. 현실의 실제적 경계는 바깥 괄호지만 삼삼이에게는 오직 안쪽의 두꺼운 괄호만이 의미를 가질 뿐입니다.
치코는 자기가 도서관옆집의 대장인 줄 아는 녀석입니다. 삼삼이가 존재론적인 고독을 통해 1의 자리를 유지한다면 치코는 야생에서 서열을 따지듯 자신을 1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마음먹고 싸우면 치코가 미노를 이기지는 못하니까요. 미노가 덩치도 더 크고 힘도 더 셉니다. 다만 서열 경쟁에 관심이 없을 뿐이죠. 아무튼 치코의 (이 집의 대장은 나라는) 자기주장은 특정 장소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공간이 대장의 자리라고 생각하면 질릴 때까지 거기에만 머무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주방의 식탁 위입니다. 식탁이라고 했지만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빈 테이블 하나를 매일 같이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잠잘 때만 자기가 좋아하는 박스나 의자로 옮겨갈 뿐 밥 먹을 때나 놀아달라고 할 때나 혼자 시간을 보낼 때나 언제나 식탁 위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오묘가 딱히 대장으로 인정해주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상한 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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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지만 절대 식탁(대장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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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개정증보판 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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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낙원>에 이어 무루 작가님의 첫 에세이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개정증보판이 오후의 소묘에서 출간되었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만큼 할머니에 조금 더 가까워진 무루 작가가 그간 쌓아온 이야기들 중 세 편을 골라 더했어요. 서수연 작가님의 그림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개정판에도 새로운 표지 그림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워진 모습으로 만나요. 여전히 이상하고, 여전히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선물처럼, 오래 곁에 두고 싶은 한 권이 되어주리라 믿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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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책방씀에서 <우리가 모르는 낙원>으로 '작가의 책상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무루 작가의 집필 노트와 드로잉, <우모낙> 속 그림책들, 반려묘 탄이 사진(!) 함께 만나보실 수 있어요. 전시 마지막 날에는 무루 작가가 일일지기로 책방에 상주합니다. 많이 찾아주세요 :)
• 무루 작가 일일지기: 6월 29(일) 2-5시
• 전시 일정: 6월 12일(목) ~ 6월 29(일) | 생일책방으로 전시가 쉬어가는 날도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해 주세요.
• 장소: 작업책방 씀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3길 1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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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모낙> 첫 북토크가 열립니다. 그림책 애호가(!) 김신지 작가님과 이야기 다채롭게 나눠주실 거예요. 알라딘에서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여름의 초입에서 반갑게 만나요. 여름은 또 그림책이 제철이지요.(!!)
• 일시: 2025년 7월 3일 (목) 저녁 7시
• 장소: 플랫폼 P(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2층 다목적실 (서울시 마포구 신촌로2길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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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모르는 낙원] 낭독회 X 라트랑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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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수원의 그림책방 라트랑슈에서 <우모낙> 첫 행사가 열렸습니다. 여럿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무루 작가님의 목소리로 듣는 프롤로그는, 혼자 눈으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어요. 이어서 서로가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정말 그랬죠!), 접어놓은 페이지를 펼치고 그어둔 밑줄을 겹치며 공명하고 연결되는 순간들 내내 다정했고요. 고독과 오해, 설거지와 단식(?!), 우연과 행운, 슬픔과 사랑까지- 저마다 자기만의 조각을 꺼내어 함께 맞춰가는 동안, 낙원의 모양도 점점 선명해졌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우모낙> 케이크에 쿠키에 꽃다발까지- 더없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준 라트랑슈는 정말 사랑이었습니다. <우모낙> 케이크 보러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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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부터 길어 올린 무루 작가의 깊은 통찰과 섬세한 목소리가 담겼다.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고독을 견디며 성장하는 단단한 마음과 길을 잃고 헤매는 데서 발견하는 온전한 기쁨, 오해와 오독의 여정을 거쳐 도착하는 이해의 세계를 품고 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멈추지 않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나도 좋은 이야기,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무루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과 요안나 카르포비치 작가의 그림을 포개어 보는 동안 여기가 낙원인가 하였다. 이 책을 읽는다면 한 번만 읽게 되지는 않으리라. _myung_0505
무루 작가님만큼 그림책을 융숭하게(정중한 태도와 극진한 사랑으로) 대하는 분을 잘 보지 못했다. 5년 만에 책에서 다시 만난 작가의 어조는 더 세심하고 진중해진 느낌이었다. 책을 읽다가 한 권 한 권 그림책을 다시 펼쳐 보는데 어찌나 좋던지. 그림책을 읽는 시간들 속에서 종종 낙원을 엿본 듯싶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찾게 해주고, 더 나은 나를 꿈꾸게 해주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새를 서로에게 내보이며 함께 다정히 나이 들어가는 곳,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새로 꿈꾸게 된 낙원이다. 한강 작가가 쓴 '빛과 실'의 이미지가 그림책 세계로도 환하게, 튼튼하게 연결되는 듯하다. _miru_book
그림책 위에 무루 작가님의 시선이 머무니 포근하고 신선한 바람이 불어 책장을 넘겨주는 느낌이었다. 그림책을 통해 이 세상의 내부를 응시하며 불완전한 인간을 이해해 보길, 불온한 세상 그 너머에 우리가 모르는 낙원이 있음을 알아차리길 다독이는 듯했다. 그리고 에세이에 소개된 그림책들은 잡을 수 없을 것 같은 희미한 빛줄기 사이에서 길을 잃게 하다가 다 읽고 나면 가느다란 빛의 날실들로 얇은 홑이불 하나를 만들어 내 팍팍한 현실을 포근히 덮어주는 것 같았다. _mrs.frederick_picturebook
주로 긴 글을 읽는 나에게 그림책은 너무나 묘하고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라 숨은 그림 찾듯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내고 싶다는 이상한 의무감이 느껴져 오히려 깊게 빠져들 수 없는 세계였다. 곁눈질하듯 힐끔힐끔 보다, 또 어떤 날은 도서관에 쭈그리고 앉아 그림책만 꺼내 보기도 했지만 나에게 그곳은 낙원도 어디도 아닌 미지의 장소였다. 무루 작가님의 그림책 에세이니 책 속 그림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림책 이야기를 이렇게 깊고 고요하게도 풀어낼 수도 있구나. 와아.. 매 이야기마다 그 안에서 1번 나, 2번 나, 3번 나.. 를 계속 만나게 된다. 나는 '아직' 여기 있지만 온전하지 않더라도 나만의 낙원을 발견하는 날도 오겠지, 낯선 기대를 품고 책장을 덮었다. __readiiit
나는 지금 그림책 전시실에 와 있다. 알고 있던 혹은 아직 모르는 그림책들이 적당한 거리에서 사이좋게 함께 한 공간이다. 내 발자국 소리가 그곳을 감각하는 나를 따라 기척을 하고, 다정한 도슨트 무루 작가님은 그런 나를 얼마든지 기다려준다. 이 낙원에서 우리의 시간엔 서두름이 없다. 낙원이라는 단어가 아름다우면서도 낯설었다. 아마 아주 오랫동안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거나 혹은 손이 닿지 않는 하늘 높은 곳에 걸어두었을 것이다. 여기 이만큼이나 가까운 줄도 모르던 내가, 숲으로 향하는 아누비스를 따라 책을 펼쳤고 다정한 마음으로 그러모은 이야기들을 마주했다. 그 목소리들은 웅장한 합주라기보다는 산속에 새와 바람과 흐르는 물의 연주를 닮았다. 저마다의 세계가 존재하는 그 연주는 우리에게 다시 걸을 수 있는 근육이 되어준다. 다시 혹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틈을 내어준다. _*moajium*_
내게는 아무 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도무지 생각할 틈도, 손 쓸 틈도 없이 삶은 쏜살같으니까. 바라볼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말로 무수히 많은 틈을 흘려보내 왔다. 작가 무루의 글 속에서는 꾸준히 틈이 등장한다. 나를 알아차리는 동시에 너를 헤아릴 수 있게 사려 깊고 섬세한 방식으로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차츰 틈을 발견하기가 수월해진다. 틈으로부터 시작된 작고 여린 것들이 꿋꿋이 몸집을 키워 세상을 향해 비집고 나오는 광경은 스스로를 각성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책을 읽고,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수많은 물음표들에 무언가 내어줄 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삶을 배운다. 천천히 무르익어 가며 깊고 풍부한 내면을 완성시킨 작가의 걸음을 조용히 뒤따르고 싶다. _1091jjy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만든 책이었는데, <우리가 모르는 낙원>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던 나에게 그녀는 등을 밀어주었고 나의 지도에 새로운 길이 보였다. 한동안 크고 작은 스트레스로 숲에 들어가 꽁꽁 숨어 살면 하루하루가 즐거울 것 같아라는 마음과 하지만 곧 외로워서 몸부림치겠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첫 이야기가 고독을 위한 레시피라니. 굵은 눈물로 만든 마멀레이드. 그 맛이 궁금하다.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야기하고 있는 그림책이 궁금해지고, 글을 곱씹고 곱씹어 본다. 나의 세계가 넓어지는 기분이다. 숲을 헤매는 느낌도 든다. 그녀가 펼쳐놓은 곳엔 언제나 삶이 있다. 그래서 위로가 된다. 가끔 답을 얻고 힘을 얻는다. _seoibowl
나는 외로울 때 조용히 그림책을 읽어. 5년 전 한동안 무루 작가님 그림책 수업을 열심히 들었더랬다. 아늑한 거실에 그림책을 크게 띄어놓고 바라보는 그 시간이 참 좋았고, 넓고 다양한 그림책의 세계에서 무루님이 뽑아오는 면면들이 하나같이 새로웠다. 또 그림과 이야기를 바라보는 무루님의 시선은 어떤지. 내겐 모든 것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중 무루님의 반가운 신간이 있어, 작가님이 뽑아놓은 대략 70권의 그림책을 차례차례 빌려보기로 작정하였다. 그림책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까 헤매지 않아도 되어 무척 든든하고, 무루 작가님 그림책 수업을 받는 기분도 되살아나 여러모로 즐거운 책 읽기의 경험 중! _cha.cha_c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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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링크 : 네이버 예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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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느꼈어요. 세상의 모든 할머니가 그렇지는 않지만 요안나 작가에게 크리샤 할머니와 스타시야 할머니가 얼마나 중요한 분들이셨는지 느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저도 꼭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할머니들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제 꿈인데요, 그 꿈에 하나가 더 추가될 것 같습니다~ 소묘에서 소개하는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늘 제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해요 :) _inyoung0408
레터로 전하는 작가님들 이야기에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게' 되신다는 말씀, 너무나 뭉클하고 큰 힘이 되어요. 그리고 인영 님은 이미 좋은 사람, 소묘에게 정말 소중한 분이세요. 늘 아낌없이 마음 건네주셔서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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