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게 펼쳐져 있던 지도가 어느새 손안으로 들어온 듯한 가을을 건너고 있습니다. 넓게 펼쳐져 있던 지도가 어느새 손안으로 들어온 듯한 가을을 건너고 있습니다. 평창, 익산, 대전, 부산을 다녀왔고요. 이제 목포, 성남, 전주, 정동진으로 갈 거예요. 큰 축척으로 움직이는 동안 이 레터를 읽어주시는 분들의 얼굴을 마주했어요. 잘 읽고 있어요. 전해주시던 목소리 하나둘셋 다섯 일곱… 떠올리며 편지하는 마음이 단단히 깊어집니다.
이달에는 지난해 펴냈던 에세이 <엔딩까지 천천히>의 미화리(이미화) 작가님을 만났어요. 책 이야기보다 사는 이야기를 나눴고,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제목과 꼭 닮은 삶을 살아가고 계시는구나, 싶었답니다. 엔딩 크레딧 다음에 펼쳐질 풍경이 궁금해지는 사람, 미화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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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까지 천천히>로 삶의 다양한 고민과 사연에 꼭 맞는 영화를 처방해 주었던 우리의 영화처방사 미화리 작가님과 이야기 나눴다. 혜은 작가님과 오래 운영해 온 '작업책방 씀'의 문을 닫고 어떤 날들 보내고 계실지 궁금했는데, 붙잡았던 한 이야기의 끝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내고 기대하고 믿으며 나아가는 모양이 여전했다. 늘 이야기와 영화를 곁에 두고 삶과 글을 이으며 나아가는 모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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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어른이 되려고 했구나!"
소묘 미화리 작가님, 중판 출래! 우리 《엔딩까지 천천히》 재쇄 축하드려요. 요즘 근황은 어떠세요? 혜은 작가님과 함께 운영했던 작업책방 씀이 공식 영업을 종료한 지 벌써 두 달 가까이 됐잖아요.
미화 씀을 완전히 정리한 지는 이제 막 한 달이 되었어요.(10월 5일) 문을 닫자마자 추석 연휴라서 친척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문을 닫았다는 실감이 안 나다가,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책방이 올린 추석 영업 공지 게시글을 보는데 '아 우리는 (연휴에) 언제부터 열지? 혜은한테 연락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때 실감이 났어요. 아, 맞다 우리 이제 계속 연휴지 ㅎㅎ 이후에는 놀랍게도 씀을 생각하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아쉽거나 그립거나 다시 돌아가고 싶다거나 후회되거나 하는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마음이에요. 이건 아마 혜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요. 세상에 이런 엔딩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깨끗한 엔딩. 마음의 불순물들은 1년이라는 이별의 시간을 가지면서 모두 채로 걸러낸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엔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어요… 놀랍게도 한 달 동안 두 편의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두 편 모두 제작사에 거절당했어요ㅋㅋㅋ 제작사 미팅 -> 이야기 구상 -> 거절 -> 새로운 이야기 구상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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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 너무나 멋있는 것! 영화 에세이도 여러 권 쓰셨고 이제 시나리오 작업까지- 늘 영화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계신데, 언제부터 어떻게 영화를 좋아하게 되셨어요?
미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 게 특별한 계기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도 기억이 안 나요. TV로도 영화를 봤으니까 영화관에서 본 게 저의 첫 영화는 아닐 거예요. 영화가 좋은 이유 같은 건 오히려 글을 쓰면서 찾은 거고, 영화를 본격적으로 보기 전부터 이야기 자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만화책,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까지, 나이에 따라서 매체만 달라질 뿐이지 그게 이야기라는 건 똑같거든요. 영화가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주인공의 변화를 보여주는 극적인 장르라서 글의 소재로 영화를 선택한 것이지, 영화를 드라마보다, 애니메이션보다 더 좋아해서 글을 쓰는 건 아니에요.
영화를 언제 어떻게 좋아했는지는 확실히 기억이 안 나지만 만화책에 대해서 또렷이 기억하는 장면이 있어요. 제가 중학교 때 수업시간에 자주 만화책을 보는 청소년이었는데요.. 그래서 뺏긴 만화책이 한두 권이 아닌데.. 한번은 학원에서도 읽다가 걸려서 선생님한테 만화책으로 뚜드려 맞았거든요. 넌 커서 뭐가 되려고 이러냐?!고 막 혼났는데.. 제작년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이런 어른이 되려고..!!! 어린 시절 <슬램덩크>를 봤던 어른이 되려고 했구나!!! 깨달음을 얻었답니다. 어려서 슬램덩크를 안 봤다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 우는 어른은 안 되었을 것 같더라고요. 저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우는 어른이 된 게 좋거든요.
소묘 《엔딩까지 천천히》에서도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가리지 않고 다뤄주셨죠. 그리고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해 주고 계신데요. 제가 올해 가장 즐겁게 듣고 있는 팟캐스트가 <두둠칫 스테이션>의 '부먹클럽'이거든요. 미화리 작가님이 들려주는 콘텐츠 이야기는 언제나 좋고, 특히 함께 진행하는 서해인 작가님이랑 두 분 성향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시각이 달라서 그 티키타카가 정말 재밌어요.
미화 저는 '부먹클럽'을 하면서 제가 좋은 콘텐츠를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소중해졌어요. 그건 제가 콘텐츠에 편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누군가가 너무 좋다고 추천하는 콘텐츠는 저도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거든요. 그게 소년 만화든, 괴수영화든, 중국 드라마든, 어떤 콘텐츠에서든 미덕을 찾아내는 것이 어쩌면 내가 가진 능력이고 개성일 수 있겠구나. 그게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능력일 수 있겠지만, 저의 삶에는 도움이 되거든요ㅎㅎ
소묘 올해까지만 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아쉬웠는데요. 앞으로 미화리 작가님의 영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다른 자리나 계획이 있을까요?
미화 '부먹클럽'은 올해까지만 진행하지만, 혜은과 함께 (또 혜은) 라디오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TBS 교통방송에서 격주 화요일 4시에 '씀 라디오'라는 이름의 코너를 맡게 되었어요. 둘이서 한 권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각자의 정체성에 맞게 저는 책과 어울리는 영화를, 혜은은 책에 맞는 음악을 추천합니다. 다시듣기는 팟빵에서 가능하니 많관부입니다~! (11월 4일 첫방송)
"김칫국을 마시는 동안 아주 새콤하고 짜릿했으니"
소묘 팟캐스트만이 아니라 유튜브 <미화리 로그>를 운영 중이기도 한데 최근 영상 제목이 '고베 영화 여행 | 우리들의 [해피엔드]'예요. '무브드바이무비 프로젝트'의 일환이죠.
미화 무브드바이무비(moved by movie) 프로젝트는 영화의 촬영지로 여행을 떠나서 영화에 나온 장면을 글과 사진으로 담는 프로젝트예요. 베를린에서 지낼 때 유럽 국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비엔나 <비포선라이즈>, 파리 <비포선셋> <미드나잇인파리>, 런던 <노팅힐> <클로저> <어바웃타임>, 더블린 <원스>, 리스본 <리스본행 야간열차>, 헬싱키 <카모메식당>)들을 작업해서 나온 책이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이에요.
유튜브를 시작한 후로는 촬영지를 찾아가는 과정도 함께 담아서 영화여행 브이로그로 만들고 있어요.(<퍼펙트 데이즈>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바닷마을 다이어리> <윤희에게> <해피엔드> <귀에 맞으신다면> <상견니>) 이제는 사진보다는 영상이 더 메인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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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바닷마을 다이어리> 같은 일본 영화들은 아예 프로젝트의 이름을 그대로 쓴 《Moved by Movie》 책으로도 내셨죠. 그 책에 담긴 영화 다섯 편 모두 좋아해서 더 깊이 빠져들며 봤던 기억이 나요. <걸어도 걸어도> <러브레터>까지요. 그동안 또 쌓인 여행이 많으실 텐데 다음 책도 기대하게 돼요.
그러고 보니 이번 <해피엔드>도 일본 영화였네요. 그리고 혜은과의 이별 여행이기도 했어요. 미화리 작가님에게 혜은이란?ㅎㅎ
미화 이별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인 거 같아요. 씀처럼 혜은과 함께하는 경험과 이별할 수는 있지만 혜은 자체와 이별할 일은 없지 않을까..
소묘 뭉클해라, 전에 씀에서 북토크할 때 어떤 질문 때문에 둘의 엔딩을 상상하다 울먹이셨던 것도 떠오르네요. 씀도 그렇고 부먹클럽도 그렇고 미화리 작가님이 정성껏 이어온 일들이 하나둘 엔딩을 맞고 있는데요. 《엔딩까지 천천히》에서 무언가에 열심을 다하고 또 그것을 후련하게 그만두는 마음에 대해서 써주셨잖아요. 어떤 계기로 '이제 그만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드는지도 궁금해요.
미화 저의 원동력은 김칫국 마시기예요. 김칫국을 마신다는 말에는 '실망'이 예견되어 있잖아요. 기대하는 일만으로는 김칫국이라고 하지 않고, 실망을 해야만 김칫국의 완성이니까요. 그런데 사실 김칫국 마시기의 장점은 실망이 크지 않다는 점이에요.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긴 하겠지만 김칫국을 마시는 동안 아주 새콤하고 짜릿했으니 그 기억으로 다음을 도모하고 또 기대하고 또 김칫국을 마실 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무언가를 그만해도 되겠다고 생각되는 시기는 다음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을 때예요. 나의 기대가 수명을 다하는 시기라고 해야 할까. 부먹클럽도, 책방도 그래서 후련하게 그만둘 수 있는 것 같아요. 김칫국을 마시는 동안에 마음을 다해 기대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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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모르는 낙원] 예스24 2025 올해의 책 후보 선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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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나온 수많은 책들 중에서 무루 작가님의 <우리가 모르는 낙원>이 에세이 분야 후보로 올랐습니다. 기쁘고 감사해요 :) 본선 투표를 통해 독자들의 선택을 받은 50권이 최종 투표 후보가 된다고 합니다. 🗳️ 본선 투표는 11월 19일 오후 12시까지! 예스24에서 올해의 책 투표하고, 상품권과 크레마클럽 이용권 받아가세요. 후보에 오르지 않은 책들도 검색하여 인기상 투표로 참여할 수 있다고 하니, 오후의 소묘 책들 아껴주시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소중한 한 표 부탁드려요. 으쌰으쌰! [투표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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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르는 마음: 리브레리아Q 서점원 노트] 소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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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레리아Q와 꼭 닮은 공간 르물랑에서 신유진 작가님의 사회로 정한샘 작가님의 두 번째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공간을 열어서 장소로 만들어가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 유진 작가님의 이 말이 오래 남습니다. 두 분의 대화 속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의 시간과 그곳을 찾는 이들의 경험이 쌓이며 하나의 장소가 되어가는 모습이 켜켜이 펼쳐졌어요. 큰 불행을 맞이하며 살아가는 날들에, 자신과 타인이 겪고 있는 아픔을 기민하게 반응하고 예민하게 바라보는 책들을 골라 건네는 일- 서점원Q의 두려움과 기쁨도 그 속에 촘촘히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과 함께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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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레리아Q와 같은 지역에 있는 용인의 동네책방 북살롱벗에서 다정한 마음으로 자리 책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리브레리아Q 북토크 놓쳐서 아쉬우셨던 분들 이번엔 꼭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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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도 <고르는 마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대설 무렵 전주 책방 토닥토닥에서 만나요. 신청 공지는 차차 전하겠습니다.
•12월 7일(일요일) 오후 3시 | 책방토닥토닥(전주시 완산구 풍남문2길 53 남부시장 2층) @todak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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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다정한 장소 한쪽가게에서도 장일호 기자님의 사회로 북토크가 열립니다. 모집은 금세 마감이 되었다고 해요. 2025년 11월 23일 오후 3시! 신청해 주신 분들 모두 반갑게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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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묘살롱 X 동네책방] 찾아가는 오후의 소묘 시즌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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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모양>을 함께 읽으며 모니카 바렌고의 그림 세계를 깊이 들여다본 세 번째 소묘살롱 X 티티새와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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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소묘살롱 | <여전히 나는> 깊이 읽기: 모니카 바렌고가 그려낸 사랑과 그리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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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목) 저녁 6시 30분 | 오늘의 페이지(목포) @todays_page_•정원은 마감되었지만 한두 자리 더 마련해 주신다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신청해 주세요! 신청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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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소묘살롱 | <할머니의 팡도르> 낭독 다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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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토) 오후 3시 | 포도씨책방(성남) @podosee_book•신청 및 문의는 책방 인스타그램을 참고해 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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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편지에서 <이치코의 코스묘스>를 쫄깃하게 읽고 난 기분이 신선해서, 저도 답장을 쓰고 있어요. 저희 집에는 고양이 둘, 사람 둘이 있는데요. 고양이의 시계는 눈에 띄게 빠르게 가니까 고양이의 죽음, 또는 돌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럴 때마다 언젠가 보았던 인터뷰의 한 구절도 떠올리고요. 만약 내가 집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반려동물은 어떻게 하나 라는 내용이었어요. 요즘은 저 자신의 삶에 대해 사춘기처럼 고민하는 중년이 되어서 미처 청년기의 고양이와 노년기의 고양이는 생각지 못했어요. 철없는 인간과 철을 아는 고양이들 사이는 이토록 가깝고도 멀었네요. 아무튼 미래는 여전히 막막하고 고양이들과 저라는 인간 사이에 함께 할 시간과 기쁨을 생각하니, 좀 더 행복한 쪽으로 걸어야겠다 싶어요. 코스모스처럼 광활한 생각의 더미로 안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쫄깃'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후. '내가 집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반려동물은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은 저도 제 익숙한 반경 너머로 나설 때마다 떠올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늘 지인들에게 당부를 해놓는답니다. 이렇게 "노후는 친구들과 함께"라는 이치코의 말을 또 한 번 새기게 되네요? 친구가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행복한 쪽으로 함께 걸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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