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 정혜
불과 8년 전이던 2014년 5월 이맘때만 해도, 내가 ‘고양이 집사이자 캣맘’이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사회적 타살’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나는, 동물학대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사건을 조사하던 영화인이었을 뿐 동물을 반려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집 근처 화정터미널에서 상인들의 돌봄을 받다 구조된 아기 고양이의 사진을 본 후 내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꺾여 흐르기 시작했다.
운명 같았던 그 아기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후, 혼자서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텍스트로 내 머릿속에서 담아놨던 정보들은 고양이와의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 백지장이 되고 말았다. 고양이 구조 단체를 통해 입양했기에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담당자님을 귀찮게 만들면서 대처를 해나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피식- 하며 웃고 넘어가는, 마치 한 편의 만화 같은 순간들이 많았다. 비닐봉지를 물어뜯다 삼켜서 토하는 아기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을 생각도 못 하고 어깨에 얹어 안은 채 10분 거리를 펑펑 울며 뛰어갔던 나, 유일한 동거 생명체인 나에게 놀아달라는 시그널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내다가 코를 물렸던 나… 그렇게 시행착오를 겪고 공부도 더 하면서 두 식구는 8년이 지난 지금 다섯이 되었다.
고양이들을 반려하고 길고양이들을 돌보게 되면서 주변에서 고양이를 입양할 계획이거나 갓 입양한 경우 질문이나 도움을 구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갔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실수 덩어리였던 나였기에 그분들에게는 ‘고양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모시고 사랑하는 자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런 지점에 있어서 이 책 <이번 생은 집사지만 다음번엔 고양이가 좋겠어>와 맞닿은 부분이 많았다. 고양이 집사로서 이 책 외에도 계속 협업 중인 글쓰는 작가 니오 사토루와 그림 그리는 작가 고이즈미 사요가 만든 이 책은, 두께는 얇아도 시간의 깊이가 담긴 책이다.
문화예술을 업으로 하면서 일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첫 해외 여행지도 일본이었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소위 ‘나른한 느낌의’ 일본 영화들을 좋아한다. 특히 문학 중에서는 ‘하이쿠’를 좋아해서 요즘도 자주 읽는 책이 <바쇼의 하이쿠>(민음사 펴냄)인데, 이 책에서는 니오 사토루의 산문과 함께 고양이에 대한 단상을 담은 ‘단가’가 담겨 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짧은 산문과 시가 연이어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묶여 있는데, 여기에 고이즈미 사요의 단순한 선이지만 고양이 특유의 감성을 잘 담은 그림들이 마치 잘 어울리는 다과처럼 조합이 좋았다. “고양이의 시간은 밀도가 높고 속도가 빠릅니다.”
이 한 문장이 내 가슴속에 비수처럼 꽂혔다. 동갑내기인 첫째 턱시도와 둘째 젖소는 재작년부터 부쩍 나이가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40대에 갓 진입했던 나도 크게 아프면서 나이 듦과 어쩌면 먼 일이 아닐지 모를 우리들 사이의 작별에 대해서 생각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의 사진보다 나이 들고 투병 중인 고양이들의 사진에 훨씬 눈이 가고 잔상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이제는 고양이들에게 인간의 언어를 뱉기보다, 그들의 깊은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건네고, 혹시나 몸이 불편하지 않은지 더욱 세심해지는 것이 내가 그들을 가족으로서 존중하고 사랑하는 최선임을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작가들(보통 책에 있어서 글쓴이를 중심으로 이야기하지만, 나는 이 책을 글쓴이와 그린이가 함께 만든 책이라고 지칭하고 싶다)은, ‘앞으로 20년’ 함께할 삶에서 시작하여 간병과 죽음까지 책임질 ‘이별’을 이야기한다. 동물범죄 중 특히 유기의 경우 반려하는 동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시의 조사 결과만 봐도, 노령보다 저연령 유기동물이 훨씬 많은데 이는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로서의 인식이 아직까지 많이 부족하다는 걸 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이 집사들이 하나씩 가졌으면 하는 우리만의 선언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초심이 흔들릴 때, 고양이가 아파서 나조차도 많이 힘들 때,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반려동물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과 충돌이 있을 때 읽을 수 있는 그런 선언문 말이다. 고양이들은 인간의 언어가 아닐 뿐, 온몸으로 말하는 동물이다. 굳이 살을 맞대지 않아도 그 호수 같은 눈빛과 아름다운 꼬리의 움직임과 나른한 몸놀림을 통해 우리는 평화를 느낀다. 지금 이 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리의 현재는 지극히 괜찮다’는 걸 인정하게 만드는 고양이들. 책 제목이 <이번 생은 집사지만 다음번엔 고양이가 좋겠어>라는 건, 그만큼 현생에서 괜찮은 집사가 되고픈 나의 소망이며 배은망덕한 집사들을 사랑해주는 고양이에 대한 찬사임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이 ‘오후의 소묘’가 만들어진 직후 출간된 책이라 소묘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방향을 잘 담은 책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되 꾸밈없이 사랑하며 기대를 바라지 않는 자세를 가르쳐 준 고양이들처럼 짧은 글과 그림이 만나 우리의 삶을 좀 더 괜찮게 여물게 해주는 ‘오후의 소묘’의 3주년을 축하하며 우리의 만남과 이별 사이의 수많은 순간들을 고양이 걸음처럼 나른한 듯 아름답게 잘 담아주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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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소묘 3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백일장 당선작 한 편을 오월의 두 번째 편지로 전합니다. 리뷰 도서인 <이번 생은 집사지만 다음번엔 고양이가 좋겠어>(이하 이집다고)는 오후의 소묘가 출판사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기 전, 당시 고양이책방 슈뢰딩거에서 텀블벅으로 출간한 독립출판물이었는데요.(그래서 저희 첫 책은 <섬 위의 주먹>으로 삼고 있고요.) “소묘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방향을 잘 담은 책이라고” 이렇게 초심의 초심을 되짚어주셔서 저도 찬찬히 다시 펼쳐보았답니다. “호수 같은 눈빛과 아름다운 꼬리의 움직임과 나른한 몸놀림”의 고양이들과 더불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꺾여 흐”른 정혜 님과 우리의 삶을 다독이고 응원하며, 축하와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