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영화처방 편지를 띄웁니다. 마지막인 만큼 각별히 여기는 편지를 골랐어요. 네 번째 영화처방 편지를 띄웁니다. 마지막인 만큼 각별히 여기는 편지를 골랐어요. 미화리의 짧고 굵은 PS.의 한 방이 처음 원고를 받은 여덟 달 전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오래오래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모퉁이의 신’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을 믿으며, 부디 전진하는 날들이길. 이 엔딩은 새로운 오프닝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주세요. 곧 다시 만나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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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화
시나리오 작법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주인공을 뜻하는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와 적대자를 의미하는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한 편의 시나리오는 결국 주인공이 적대자인 안타고니스트를 무찌르고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목표가 원대할수록 적대자의 힘도 세지고 그만큼 주인공의 시련과 좌절도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에 그의 앞날에 가시밭길이 펼쳐지리란 건 안 봐도 빤합니다. 이때 주인공에게 필요한 게 조력자입니다. 조력자는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슬며시 다가와 삶의 지혜나 힌트만 건네고 퇴장하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목표를 이루면 해피엔딩, 적대자에게 가로막혀 이루지 못하면 새드엔딩이 됩니다.
인생을 이야기로 비유하는 작가가 많지요. 목표 달성 여부가 인생의 결말을 구분 짓는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해서 해피하기만 하거나 얻지 못한다고 해서 새드하기만 한 건 아니니까요), 인생의 크고 작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넘어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과정은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매일의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각자가 바라는 삶에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안타고니스트는 종류와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 삶 곳곳에 선명하게 존재합니다. 그와 반대로 조력자의 존재감은 희미합니다. 영화에서처럼 적재적소에 나타나 결정에 도움을 주거나 멍청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대사 한마디로 깨달음을 주면 좋을 텐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도무지 나타나질 않습니다. 현자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나를 믿어주고 내 꿈을 지지해 줄 한 사람이면 충분한데. 현실에선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꿈을 방해하는 적대자로 돌아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재활센터에서 지내고 있는 웬디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웬디의 목표는 TV 드라마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자신이 쓴 원고를 보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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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이 있어. 오늘까진 부쳐야 해. 완전히 준비될 때까지 보내기 싫어서 두 번, 세 번, 네 번 확인했고 이젠 우체국에 가도 돼. 지금 부치면 제때 도착하니까 우체국 갔다가 같이 집에 가자. 우승해서 10만 달러 받으면 엄마 집 팔 필요도 없어. 집에 가면 루비도 봐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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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가 〈스타트렉〉 공모전에서 우승하고 싶은 진짜 이유는 재활센터가 아니라 집에서 언니와 갓 태어난 조카 루비와 함께 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니도, 센터장도 자폐성 장애가 있는 웬디가 공모전에 당선되리라고는, 센터를 나가 집에서 생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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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넌 못 해.” “어떻게 알아? 못 할지 어떻게 알아? 나 이제 집에 가도 돼, 언니. 알바도 구했고, 혼자 다닐 수도 있어. 뭐든 물어봐. 맞게 대답할게. 내 앞가림 할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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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의 안타고니스트는 그러니까, 장애 그 자체이기보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줄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언니와의 언쟁으로 결국 기한 내에 시나리오를 우편으로 보내지 못한 웬디는 제작사에 직접 제출하기 위해 몰래 센터를 빠져나와 LA로 향합니다. 센터장이 무슨 일이 있어도 건너지 말라고 했던 건널목을 건너고, 어렵사리 탄 LA행 버스에서 자신을 따라온 강아지 때문에 강제 하차까지 당한 웬디는 급기야 에어팟과 돈을 소매치기당하는 바람에 마치 자신이 쓴 시나리오 속 주인공처럼 낯선 거리를 배회합니다. 목적지까지 시간 내에 갈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 웬디는 잠시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찬찬히 읽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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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일지. 마지막 기재. 엔터프라이즈호 실종 추정. 스팍과 나만 살아남았다. 우리의 운명은 미지수다. 스팍은 별들로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 외계 황무지의 황량한 윤곽들을 살핀다. 컴컴한 심연을 들여다보며 스팍은 전에 못 보던 걸 보았다. 스팍은 죽어가는 커크를 두 팔로 안는다. 그의 함장이자 그의 친구를. 커크는 스러져가는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난 안 되겠네, 스팍. 혼자 행성연방을 살리게.” “안 됩니다, 함장님. 혼자선 아무 데도 안 갈 겁니다.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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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바이, 웬디〉, 벤 르윈 감독,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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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지해 주지 않는 꿈. 붙잡고 나아가야 하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인 상황에서 웬디는 전진하기를 선택합니다.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 마치 온 지구가 나서서 자신의 꿈을 가로막는 것처럼 방해 공작을 펼치는 중에도 웬디는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해 무사히 파라마운트사에 도착합니다. 언니도, 센터장도 믿어주지 않았던 일을 혼자서 해낸 것이죠. 조력자 없이도 안타고니스트를 이겨내고 스스로 목표를 이룬 프로타고니스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마감 기한 내에 파라마운트사에 도착해 원고를 전달하기까지 웬디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을까요?
웬디에게도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들을 ‘모퉁이의 신’이라고 부릅니다. 골목의 모퉁이를 돌 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도움을 주는 신 같은 존재. 누군가는 ‘변장한 천사’라고도 부르는 낯선 사람들입니다. 웬디가 바가지 쓰지 않게 도와준 할머니, 길에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웬디를 위해 담요를 덮어준 터미널 직원, 〈스타트렉〉의 클링온어를 사용해 웬디를 안심시킨 경찰관, 그리고 유일하게 웬디의 시나리오를 읽어준 센터장의 아들. 웬디가 무사히 꿈에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웬디가 길을 잃으려 할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다정을 베푼 낯선 조력자들 덕분이었습니다.
내 인생에 결정적인 조력자는 없을지 몰라도 가깝지 않은 거리에서 나를 지지해 주는 이들은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야기 밖 진짜 삶에서의 조력자는 낯선 얼굴로 찾아오는 걸지도 모릅니다. 선택과 책임은 모두 내 몫이며, 나 아닌 다른 이에게 결과를 좌우할 만큼의 영향력을 넘겨줄 수는 없으니, 내가 꿈을 놓지 않을 만큼만 응원해 주기 위해 변장한 천사가 모퉁이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닐까요. “계속해 주세요.” “응원하고 있어요.” 결정권 없는 타인의 한마디 덕분에 우리는, 자신을 조금 더 믿어보게 되니까요.
가까운 곳에 나를 지지해 줄 사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 적당한 거리의 타인이 보내주는 선의에 기대어 나아가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을 훼방 놓으려는 가까운 적대자들의 기운에 지지 마시길. 믿을 사람도, 버틸 원동력도 오로지 나 자신뿐인 상황일지라도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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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을 누군가에게 말하기가 어렵거나, 아무도 지지해 주지 않을 때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을까요? 믿을 사람도, 버틸 원동력도 오로지 나 자신뿐인 상황 속에서 응원이 필요해요.
-J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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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님이 꿈과 멀어지고 있을 때 모퉁이에 서 있을게요. 부디 저를 알아봐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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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영화처방사. 영화를 곁에 두고 글을 쓴다.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다. ‘영화책방 35mm’를 운영했고, 지금은 망원동에서 ‘작업책방 씀’을 동료와 함께 운영한다. 《Moved by Movie》(2024), 《영화관에 가지 않는 날에도》(2022), 《수어》(2021),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2020)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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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나도 영화처방사!] 답장 감사합니다. 이벤트는 5월 31일까지 열려 있으니 많은 참여 바라요 :)_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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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딩까지 천천히] 6월 첫 주 출간 예정입니다. 처방 영화 보시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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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고민 사연에 처방할 나만의 영화가 있다면 꼭 추천해 주세요.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 출간 후 저자 사인본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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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고민 사연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힘들어요”에 독자님이 처방해 주신 영화를 나눕니다. 사인본 보내드릴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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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롬씨 님의 추천 <4월 이야기> <4월 이야기>라니, 조금 당황 하셨을 듯합니다.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따뜻한 시선으로 주인공의 대학합격, 독립을 응원해 주면서 시작됩니다. 아마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부럽고 얄미운? 영화이죠, 아마 판타지같다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때로는 우리 현실과 다른 판타지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판타지가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또 하나, 새로 도전, 독립을 시작하는 모든 분들의 걱정도 있겠지만 두근거림도 있을 듯싶습니다. 저는 그러거든요 :) 그런 두근거림을 불안이 덮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에 추천합니다. 마지막 주인공의 대사에서 ‘어짜피 기적이라 부를거면, 나는 사랑의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라고 합니다. 저는 이 대사를 약간 비틀어 말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기적이라고 부를거면, 나는 알에서 깨고 앞으로 나아가는 기적’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처럼 독립이라는 건 알을 깨고 나아가야하는 일이기에 쉽지가 않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처럼 뭔가를 얻기위해서는 안락한 곳을 떠나야 하죠, 그러기에 안락함 그 속의 불안 때로는 공포일수도 있는 삶을 버리고 나아가려는 모든 이들의 인생에 이 영화처럼 사랑스러운 판타지 한스푼이 들어가길 바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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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후반, 늦은 나이에 독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번주 토요일 집을 보러 갑니다. 그래서인지 고민자의 상담 글이 더욱더 제 이야기 같았고 작가님의 조언이 마음속으로 와닿았습니다. 오히려 20대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어른이 되었는데 독립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20대 보다 더 깊었습니다. 더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계속 나에게 주문을 건 듯합니다. ‘지금까지 해왔잖아, 나는 원래 엄마 역할인 청소 빨래 등을 해야 하는 사람이야’라고 그렇게 불안을 위로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워질 수 있고 진정 나를 만날 수 있고, 더 이상 가족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 벗어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추천해주신 영화, 영화 속 대사가 저에게 더욱 힘이 됩니다. 시작은 이미 정의가 되었습니다, 그걸 받아드려야겠죠, 하지만 받아들이기, 거기까지만 할 겁니다, 그 말이 저를 더 이상 정의하지 않게 두진 않을거예요, 왜냐면 나는 매일 내 스스로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으니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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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오후의 소묘 스튜디오(서울 은평구 응암동)
• 시간: 화-토 15:00~18:00 | 3시간 15,000원(다과 포함) • 신청하기: 네이버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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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까지 천천히] 출간 전 연재,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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