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okie 짝사랑으로 나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어요 | 플립
↳ PS. 줄리가 브라이스의 끝없는 거절과 실망스러운 행동에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마음속에 단단히 뿌리 내린 나무 덕분이 었어요. 소와 잔디와 꽃과 햇살이 한데 어우러지면 마법 같은 풍경이 된다는, 부분이 모여서 아름다운 전체를 이룬다는 걸 일깨워 준 나무 덕분에 브라이스가 좋아하지 않는 나의 부분이 곧 내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거든요.
M 님은 어떤 풍경의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저는 욕심 부리지 않고 가진 것 안에서 행복한 풍경을 이루고 싶어요. 과하게 흘러넘치지 않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것이 물질적 풍요든, 감정이든. 부족한 부분이 모여 제법 괜찮은 전체를 이루고 싶어요. 그 풍경이 희미해질 때마다 플라타너스에 오르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꺼내보고 싶어요.
M 님의 마음에도 작은 씨앗 놓아두며.
—미화리
↳ Cookie’s Cookie 안녕하세요. 짝사랑에 심신이 지쳐 어디에라도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쓴 고민이었는데 이렇게 선물로 만들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저의 2년을 써 내려가 봅니다.
2022년 봄은 제게 참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때 일하던 곳이 하필 캠퍼스 안에 있었는데 만개한 벚꽃들과 활기찬 대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저만 이곳에 멈춰 있는 듯했어요. 지난 가을 자락부터 시작된 짝사랑이 겨울을 지나 봄까지 왔는데 저의 그리움과 아쉬움은 내내 추운 겨울에 머무른 것 같았죠. 당시에는 그에게 먼저 연락도 할 수 없어 혼자 이런저런 생각만 하며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것 또한 너무 어려워 짝사랑을 계속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져버렸습니다. 가끔은 그를 좋아하는 건지, 그를 이토록 열렬히 좋아하는 저의 모습에 취한 건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어요. 지난 연애에서 차였을 때도 이렇게 오래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대체 이 사랑은 뭔지…
그해 여름까지도 저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물론 여름에 있을 저의 생일을 디데이로 정해놓고, 이날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깨끗이 잊어주겠어. 라고 다짐을 하고 말이죠. 하지만 생일날 퇴근할 때까지도 그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봄이었던 그의 생일에 보낸 편지와 선물을 받고 고마워하던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도는 것 같은데. 결국 나의 다짐대로 이 짝사랑을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한동안 숨겨놨던 서러움이 터져나왔어요. 차 안에서 터널에 막 진입하고 있던 찰나였는데, 속상함에 눈물이 막 나더라구요. 그때 거짓말처럼 그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저희의 연애는 그해 여름부터 시작되었답니다.
제가 고민에 적었던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말이 비단 짝사랑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음에 단단한 나무가 없던 저는 작은 일에도 세차게 흔들리며 살아왔거든요. 그러다 짝사랑이라는 큰 고비를 만나고 점차 깨달았어요. 나를 살피고 돌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저의 내면에 있던 긍정이란 긍정은 다 끌어모아 전례 없던 긍정 에너지를 뿜어내고 다녔어요. 매일 감사일기를 쓰고 파이팅 넘치게 지냈어요. 친구들은 짝사랑에 미쳐 결국 살짝 돌아버렸구나! 라고 했지만, 저는 그때 제 마음에 작은 나무를 심었던 거였어요. 나의 감정을 살피고, 나에게 힘을 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때마다 제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났어요.
저는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의 나무는 아직 너무 작을 테지만, 고난과 역경이란 태풍에 잠시 흔들릴지라도 자리를 굳게 지키는 크고 튼튼한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 나무들이 뻗어나가 숲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제가 숲을 좋아하거든요. 이렇게 길게 전하려던 건 아닌데 늘 장황하게 말하는 습관이 있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누구나 삶에 한 번쯤은 영화 같은 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 눈꼴 사납지만 지금 저는 그 영화 같은 시간 속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의 영화는 대체로 로맨스였다가 때때로 스릴러이기도 하고 가끔은 액션, 공포이기도 합니다. 짝사랑은 확신의 로맨스인데 사랑은 로맨스로만 내내 지속되지는 않더라구요. 하하. 낭만이 부족한 요즘 <엔딩까지 천천히>는 소중하고 특별한 낭만이 될 것 같습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 얘기라면 밥 안 먹고 하루 종일 떠들 수 있는 그와 줄곧 어딘가에 내 글 하나 연재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사는 저에게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영화처방 편지라니, 정말 낭만 아닌가요? 이번 주말에는 처방해 주신 영화를 그와 함께 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M
Cookie 내가 할 수 있을까, 자꾸 의심이 듭니다 | 4등
↳ PS. 실력에 대한 확신은 스스로가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작가 활동을 시작한 지 7년이 되어서야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었거든요. 7년이나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다는 건 내게 실력이 있다는 것이겠지, 하면서요. 무엇이 되기 전까지 중요한 건 확신이 아니라 그것이 좌절되어도 계속 좋아할 수 있는가입니다. 그럴 수 있다면 당장의 점수가 어떻든 킵고잉 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미화리
↳ Cookie’s Cookie 안녕하세요. 진로 관련해서 고민 보냈던 학생입니다. 사연을 보낼 때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는데, 벌써 3학년이 되어 졸업을 바라보고 있네요. 답장이 빡빡한 일상에 찾아온 깜짝 선물 같았어요.
지금도 번역가를 목표로 입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고민은 중학교 때부터 꾸준하게 했었는데, 고등학교는 그런 생각을 할 시간조차 주지 않더라고요. 입학하자마자 진로 관련해서 동아리도 들어야 하고, 진로 관련 발표도 해야 하고. 진로를 확실히 정해야 제대로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쏟아졌어요. 그래서 여전히 불안했지만, 이만큼 하고 싶은 일도 안 나타날 것 같아서 그냥 번역가라는 꿈을 안고 가기로 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꾸준히 영어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번역을 너무 좋아하면서도 두려움에 입버릇처럼 후회의 말을 뱉기도 했어요. 처음 이 꿈을 가지게 해 준 사람을 원망한 적도 있고요. 요즘은 그래도 그런 시간들을 거쳐 꿈이 더 단단하고 확고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년 막바지에는 성적이 나름 잘 나왔는데, 꾸준히 해온 덕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꾸준히 밀고 나가려고 합니다. 킵고잉이 아직은 해답인 것 같아요.
정성 가득 담긴 답장 감사합니다. 덕분에 과거를 잠시 돌아보고 다시 힘을 내서 달려보려고요. 좋은 하루 되세요:)
—P
Cookie 아무도 내 꿈을 지지해 주지 않아요 | 스탠바이, 웬디
↳ PS. 웬디에게도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들을 ‘모퉁이 의 신’이라고 부릅니다. 골목의 모퉁이를 돌 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도움을 주는 신 같은 존재. 누군가는 ‘변장한 천사’라고도 부르는 낯선 사람들입니다. 웬디가 무사히 꿈에 다가갈 수 있었던 건, 웬디가 길을 잃으려 할 때마다 어 디선가 나타나 다정을 베푼 낯선 조력자들 덕분이었습니다.
J 님이 꿈과 멀어지고 있을 때 모퉁이에 서 있을게요. 부디 저를 알아봐 주세요.
—미화리
↳ Cookie’s Cookie 2년 전의 나는 저런 고민을 했었구나… 다시 읽어보면서 기분이 새로웠어요. ‘고민을 왜 저렇게 썼었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지금의 저는 다른 삶을 살고 있어요.
제 꿈을 아무도 지지해 주지 않는다고 응원이 필요하다고 썼었는데요. 현재의 저는 제가 하고 싶었던 일들 중에 하나를 직업으로 갖고 살고 있답니다. 프리랜서라서 때로는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중심이 바로 서니까 2년 전만큼 불안하지는 않아요. 또 많지는 않지만, 저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도 생겼고요. 가족들도, 주변인들도 제가 하는 일을 인정해 주고 있어요.
저 역시 이야기의 힘을 믿는 사람이고,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성장영화들을 찾아보며 위로를 받곤 했는데요. 사실 미화리 님이 추천해 주신 <스탠바이, 웬디>도 제가 애정하는 영화들 중 하나랍니다. 미화리 님의 따뜻하고 세심한 문장들 덕분에 저의 마음에 큰 위안과 힘이 되었어요.
익명으로 편지를 보낸 저를 위해 모퉁이에서 서 있겠다고 하신 것처럼, 저도 소묘팀과 미화리 님을 응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