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PACS를 하려고 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엄마는 팍스가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팍스란 주로 혼인 관계를 인정받지 못하는 동성 연인들이 가정을 이루고자 할 때, 그들의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고, 결혼의 결속력은 없지만 법적으로 관계를 인정받는 일이며, 한마디로 말해 합법적 동거다’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적절한 단어를 골랐다.
“약혼 같은 거야.”
약혼이라니… M이 그 단어의 의미를 알았다면 나를 비웃었을 것이다.
엄마는 팍스를 결혼의 약속 정도로 이해했던 것 같다. 결혼을 피하려고 팍스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그렇게 기뻐했을까. 물론 기뻐하진 않았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엄마는 늘 그랬으니까. 나를 이해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상황을 상상하고 좋은 쪽으로 해석했다.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은 나였지만, 이야기의 화자이자 독자는 엄마였다. 다시 말해 이야기 속 삶을 사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는 뜻이다. 엄마의 이야기 안에서 나는 엄마가 되고 엄마는 내가 됐다. 물론 나의 이야기 안에서 내가 엄마가 되어본 적은 없다. 나는 엄마를 엄마로만 상상할 수 있다. 엄마가 아닌 엄마는 오직 내가 없는 곳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팍스 신고 일주일 전, 한국에서 소포가 왔다. 시청에 종이 한 장을 제출하면 끝나는 일을 엄마가 예식으로 착각한 게 아니었을까. 박스 안에 엄청난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화려한 무늬가 있는 얇고 부드러운 소재로 된 하얀 원피스, 원피스에 어울리는 구두, M이 입을 재킷, 우리가 나눠 낄 반지, 그리고 늘 소포에 들어 있는 엄마의 편지.
(…)
나는 저녁을 먹은 뒤 주방 가위를 들고 욕실에 들어가 충동적으로 머리를 잘랐다. 뒷머리는 어떻게 할 수 없어 M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잘려 나간 내 머리카락을 보고 놀랐지만 이내 가위를 집어 들고 내 머리카락을 살살 빗은 후에 끝부분을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그는 무섭다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뭐가 웃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훗날 이 상황을 떠올리면 둘 다 웃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머리카락을 신중하게 자르던 그가 엄마가 보낸 소포에 들어 있던 편지를 읽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편지 내용을 궁금해했다. 나는 그 편지는 엄마가 쓴 것이고, 엄마의 하루나 한국의 날씨, 아빠의 기분과 건강 같은 내용들이 적혀 있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게 전부냐고 다시 물었고, 내가 그렇다고 말하자 이내 방으로 달려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편지를 가져왔다.
“내가 읽어봐도 돼?” 그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더듬더듬 글자를 읽어나갔다.
“새… 러안 사므를 지삭키는 너에게… 맞아?” 그는 내게 편지를 돌려주며 물었고, 나는 그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엄마가 쓴 글자를 읽어줬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너에게.”
그가 자른 머리카락이 편지 위로 떨어졌다. 종이 위로 굵은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지던 그 머리카락과 엄마의 글씨와 내 머리카락을 빗겨주던 그의 손길을 지금도 기억한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음을 선명하게 느꼈던 그 순간을.
그는 내가 한국어로 읽어주는 엄마의 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마지막 한 문장을 제외하고.
‘우리 딸, 사랑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엄마의 편지는 ‘사랑한다’는 말로 끝인사를 대신했고, 그는 모범생처럼 그 마지막 문장을 반복해서 따라 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는 그 문장이 그가 아는 한국어 중에 가장 쉬운 말이라고 했다.
그와 나는 엄마가 보내준 옷을 입고 시청에 팍스를 신고하러 갔다. 창구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의 서류를 담당했던 시청 직원은 40대쯤으로 되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내내 무미건조하게 필요한 서류들을 요구하다가 마지막에 사인을 한 후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게 아마도 내가 ‘약혼식’ 날에 받은 유일한 축하였을 것이다.
시청을 나와서 6구에 있는 카페에 갔다. 젊은 부르주아들이 즐겨 찾는다는 거리를 걸었는데, 날씨가 맑았고 또 엄마가 보내준 옷이 어쩐지 그 동네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걷다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가 아침을 먹자고 했다. 커피와 크루아상.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침 식사. 우리는 여행지의 카페를 방문한 것처럼 조금 들뜬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그는 종업원을 불러 Petit déjeuner (아침 식사) 메뉴를 시켰다.
“얼마야? 비싸?” 나는 물었다.
“비싸면 나갈 거야?” 그가 웃으면서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잠시 망설였다. 순간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나갔을까. 엄마가 메뉴판을 딱 덮고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맛있게 먹자.” 그가 말했다.
아침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센강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머리카락을 풀고 찍었다가 어쩐지 어색한 것 같아서 묶고 다시 찍었다. 엄마한테는 묶고 찍은 사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는 사진을 보고 ‘우리 딸 예쁘네, 우리 딸 사랑한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날의 날씨와 기분과 주고받은 대화와 우리의 표정을 기록한 사진과 편지는 엄마에게 일종의 책이 됐다. 펼치면 언제든 꺼내 읽을 수 있는 책. 아마도 제목은 ‘약혼식’이 아닐까. 엄마는 요즘도 가끔 그 약혼식을 추억한다. 그 자리에 없었지만, 마치 있었던 것처럼. 그건 엄마가 쓴 하나의 소설이다.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고, 이야기의 결말은 늘 ‘우리 딸, 사랑한다’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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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 에세이 <사랑을 연습한 시간: 엄마의 책장으로부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