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써나갈 영화관에는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팝콘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대신 이런 이야기는 담을 수 있겠지. 칸에서는 기겁할지도 모를 각양각색의 영화관과, 영화와, 영화라는 꿈에 관한 이야기. 그들 각자가 영화관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 —이미화 <영화관에 가지 않는 날에도>
추석 연휴에 오른 기차 안에서 책 한 권을 읽었어요. 꼭 1년 전인 지난해 9월, 이달의 책으로 소개한 <수어>의 저자 이미화 작가의 신작입니다. 영화를 꿈꾸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주인공인 옴니버스 영화를 본 것 같았습니다. 넘어가는 책장이 릴에서 돌아가는 필름이 되고 창은 스크린인 양, 역방향으로 앉아서 다가올 풍경이 아닌 지나온 풍경이 계속해서 펼쳐지는 창밖을 배경 삼아. 그 시간만큼은 기차가 오롯한 영화관이었어요.
창밖 풍경 위로 등장인물들의 면면이 또렷이 떠오릅니다. 한국 독립예술영화 관객 점유율이 1퍼센트 대 초반에 불과한 현실에서 영화를 그만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는 사람(서이제). 이러나저러나 계속 영화를 찍는 사람(안다훈), 영화책방을 열고 싶어 하는 사람(미화리), 그러니까 꿈꾸는 사람들. GV 빌런과,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는 사람-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는 사람(정대건).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해설을 제작하는 사람(김달님), 망작을 챙겨 보고 평하는 사람(씨네쿤), 1열을 지키는 사람(서시), 그러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 무서워도 눈 돌리지 않고 똑바로 보는 사람(정마라), 마침내 자신의 영화를 개봉한 사람(안다훈), 영화책방을 열고 운영하고 망한 사람(미화리), 미지와 두려움이라는 옷장의 문을 열고 또 넘나들며 보고 쓰고 만드는 사람들. 그러니까 꿈꾸고 이루고 대체로 실패하며 실패를 잊는 우리의 주인공들.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미덕은,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실패 이후에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주인공에게서 용기를 얻는다. 나 또한 실패에 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한 이후에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저에겐 자주 영화가 책과 이야기로 자동번역되어 보이기도 했어요. 이 책이 건드린 저의 가장 약한 부분일 테죠. 좋아하기 때문에 종종 미워지기도 하고,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두고 싶은 때가 많은, 그럼에도 이러나저러나 계속 책 곁에 있는 사람.
“영화를 계속해달라는 응원을 받은 기분이라고 했다. 계속하는 건 어렵지 않지. 나는 생각했다. 진짜 어려운 건 좋아하는 걸 미워하지 않는 거야. 큰 성과가 없어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아하는 마음을 처음 그대로 간직하는 것.”
어떤 마음이든 처음 그대로 간직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그것이 꿈이나 일이라는 단어와 엮이면 더더욱… 그러나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 영화관 속 주인공들에게서 발견합니다. 가까이 또 멀리 함께하는 이들에 의지하고 응원받으며 그 마음을 갱신해갈 수 있을 거라고. 유지가 아니라 매번 새로이 고쳐 쓰는 것. 그것이라면 어렵지 않지.
어느새 애정을 품게 된 캐릭터 미화리가 몇 번이고 고쳐 쓴 한 장면은 마음속에서 여러 번 다시 상영되었어요.
— … 벽을 허무는 예술은 다층적으로 섬세하고 부드럽게 예민한 작업이었다. 벌레 우는 소리, 장작불 타는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려오는 가운데 스크린에서 새어나오는 빛에만 의지해 웃고 환호하고 박수치던 정동초등학교의 여름밤을, <나는보리>를 보았던 정동진독립영화제의 풍경을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묘사한다면 어떨까.
♬밝고 경쾌한 음악♬ ♪벌레 우는 소리♪
‘어슴푸레하게 어둠이 찾아온 초저녁의 여름 하늘 아래, 대형 스크린이 초등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다. 스크린을 바라보도록 놓인 수백 개의 간이 의자에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차있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된 텐트와 캠핑 의자, 돗자리에는 조금 더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인다’라는 표현은 조심하는 게 좋다고 했던 달님의 말이 떠올라 다시 쓴다.
‘운동장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된 텐트와 캠핑 의자, 돗자리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기대거나 누운 편안한 자세로 영화제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운동장 군데군데에선 모기를 쫓기 위한 쑥불을 태우느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여기까지 쓰고 달님에게 묻는다. 어슴푸레, 뭉게뭉게, 켜켜이 같은 부사를 써도 될까요? 달님은 시각장애인의 80퍼센트가 잔존시력이 있는 저시력 장애이니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부사는 맥락으로 이해할 거라고 말한다. 분위기를 살리는 구체적인 묘사는 필요하지만 본인이라면 ‘뭉게뭉게’보다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썼을 거라고 일러준다. ‘뭉게뭉게’를 지우고 ‘퀴퀴한 연기가 피어오르다 금세 흩어진다’고 고친다.
‘스크린 뒤로 저 멀리 기차 한 대가 기적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다.’
♪칙칙~ 기차의 기적 소리♪ ♬점점 줄어드는 음악♬
‘스크린을 향해 있던 조명이 일제히 꺼지고,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도 숨죽여 스크린을 바라본다. 스크린 위로 커다란 글씨가 떠오른다.’
제21회 정동진독립영화제
♪사람들의 함성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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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시작의 장면에, 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에, ‘별이 쏟아지는 천막 아래, 아름다운 고요 속에서’ 벌어지는 <레몬 타르트와 홍차와 별들>의 마지막 장면들이 포개졌습니다. 125마리 고양이와 할머니, 어릿광대와 쉐리코코, 몽타뉴, 꼬마 마법사 장기와 무스텔라가 차례로 무대 위에서 레몬빛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신이 꿈꿨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어 가장 사랑하는 것을 펼쳐내는 엔딩신이.
기차가 종착역에 다다르고 이야기는 끝이 나고 특별했던 저만의 작은 영화관을 나오며, <레몬 타르와 홍차와 별들>의 문장 하나를 곱씹어봐요. 안전지대를 넘어 세상의 끝을 지나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관객이 되는 그곳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함께였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