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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여긴 서점 근처에 대학교가 둘이나 있네?’
이번 달 소소한 산-책을 위해 책방을 찾아가느라 지도 앱을 열었을 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존재했던 대학가 서점을 떠올렸던 건 아니에요. 책방의 대략적인 정보와 분위기는 이미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고 있었으니까요. 21세기잖아요. 조금 궁금하긴 했습니다. 대학생들의 생활권이라는 지리적 특징이 혹시 동네책방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할까? 그러나 혹시는 역시로. 그날 둘러본 바로는 대학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책방 부비프에 다녀왔습니다.
부비프란 이름의 유래는 책방 대표님의 예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책방을 시작하기 전 제일 먼저 한 일이 항공권 구입이었다고 해요. ‘앞으로 당분간 긴 여행은 못 갈 테니 그전에 다녀오자’라는 마음이 있었고, 책방으로는 겨우 먹고산다는 주변의 말에 그렇다면 ‘가난해지기 전에 다녀오자’라는 이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다녀온 도시의 앞 글자를 따서 책방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부다페스트, 비엔나(빈), 프라하가 아닐까 해요.
그래서일까요? 책방의 인테리어에서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실내는 두 가지 컬러가 묵직하게 대비되고 있었어요. 부비프의 로고 색(#54785B)으로 추정되는 짙은 녹색이 벽과 천장을 둘러 칠해져 있고, 책장과 테이블과 의자는 대부분 마호가니 원목의 색으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공간에 깊이감을 더해주는 이 대비와 함께 책방의 가구들이 모두 엔틱(인터넷에 검색하면 나오는 바로 그) 스타일이어서 유럽 분위기가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엔틱 가구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인이기도 합니다. 목공 유경험자로서 더욱 그러한데요.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뻗은 책상과 의자의 다리, 풍성하게 동글린 문짝과 장식들, 섬세하게 조각된 테두리 마감들.. 이런 것들은 일단,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멋진 자태와 화려한 장식의 엔틱 가구를 잘 배치하기만 한다면 공간을 훨씬 다채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 넓지 않았던 부비프의 실내가 풍성하게 느껴졌던 건 아마 그 가구들 때문이었을 거예요.
책방엔 독립출판물도 제법 갖춰져 있었습니다. 전체 책의 대략 30% 정도 되어 보이는 독립출판물들이 한쪽 벽면의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방에 들어서고도 한참 동안은 독립출판물이 있는 줄 몰랐어요. 동네책방의 독립출판물 서가는 보통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판형과 장정에서 상업출판물과 조금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등 훨씬 더 큰 판형도 있긴 하지만 평균적으로) 크라운판(176X248mm)이나 46배판(188X257mm) 크기까지는 비교적 다양한 판형으로 출간되는 상업출판물에 비해 독립출판물은 대개 신국판(152X225mm)보다 작게 제작되고, 장정 역시 거의 무선제본이기 때문에 책장에 모아서 꽂아놓으면 대체로 상업출판물과 구분되는 편입니다. 책의 훼손을 막기 위한 래핑도 OPP 봉투를 많이 쓰기 때문에 바로 표가 나고요. 그런데 부비프에서 독립출판물 서가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던 건 책방의 책들이 너무나 단정하게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방 안의 모든 것들이 가지런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였어요. 책장에 꽂힌 모든 책은 선반의 앞쪽 끝 선에 딱 맞춰져 있었고 책등의 높이가 들쭉날쭉하지 않도록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표지가 보이게 진열된 책들 역시 가로세로 격자가 자로 잰 듯이 딱 맞춰져 있었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진열된 엽서와 포스터, 소품들 역시 그랬습니다. 어디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어요. 책방 한쪽 구석에 책상을 두고 일하고 계시던 두 분의 책방지기님들은 대체 얼마나 단정한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공간을 단정하고 안정적으로 정리해놓은 책방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니야, 이건 단정함만으로 되는 일이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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