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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오묘하고 낯선 움직임이 자연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스포츠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운동경기란 인간의 신체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경쟁하는 활동이기에 감탄을 자아내는 움직임이 당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때론 사람 자체의 몸놀림에 놀라기도 하고 때론 운동의 매개체가 되는 물건의 움직임에 시선을 뺏기게 됩니다. 저는 최근에 동그랗고 커다란 공을 매개물로 승부를 다투는 어느 스포츠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손을 사용하지만 공을 잡으면 안 되는, 한 사람에 닿아서 출발한 공은 반드시 다음 사람에게 가야만 하는, 공이 바닥에 닿지 않는 걸 목표로 움직이는 운동인 배구, 그중에서도 여자배구입니다. 배구공의 움직임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 매 경기 감탄하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경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배구의 아름다움을 말하기에 앞서 간단한 규칙 정도는 설명을 하는 게 낫겠지요. 아무래도 배구에 관해 전혀 모르는 분들도 계실 테니까요. 배구의 기본 규칙은 공이 바닥에 닿으면 점수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축구나 농구처럼 골대가 있는 건 아니고 서로의 코트를 구분하는 네트가 경기장 중앙에 높다랗게 장벽처럼 세워져 있죠. 공격하는 팀은 상대방 코트 안에 공이 떨어지도록 해야 하며 수비하는 팀은 공격자가 네트를 넘겨 보내온 공이 자기 코트 바닥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배구는 공이 공중에 계속 떠 있는 스포츠입니다. 이 때문에 배구공의 아름답고 불규칙한 운동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고.. 축구, 농구, 야구와 구별되는 배구의 독특한 점은 규칙 위반이 곧바로 점수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아무리 심한 반칙이나 규칙 위반이 있어도 점수를 직접 주지는 않습니다. 아주 쉽게 점수를 낼 수 있는 상황(페널티킥, 자유투 등)을 제공할 뿐이죠. 하지만 배구는 네트를 살짝 건드리는 행위만으로도 상대방에게 1점을 헌납하게 됩니다. 이렇게나 예민한 스포츠라니..!
배구공의 움직임은 아름답습니다. 우아합니다. 그러면서 매섭고 날렵합니다. 만약 경기가 중계되는 화면에서 공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검게 처리한다면, 배구공의 움직임은 마치 깜깜한 우주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UFO의 모습과 같을 겁니다.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유연하게 날아가다가 갑자기 빛의 속도로 맹렬하게 돌진하기도 하고, 그러다 마치 벽에라도 부딪힌 듯 날아오던 방향으로 강렬하게 튕겨 나왔다가 또 매끄러운 동그라미의 궤적으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어딘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UFO의 비행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UFO를 본 적은 없지만 말이에요. 저는 배구공의 이 불규칙하고 아름다운 움직임에 매료되어 스포츠 관람 역사상 처음으로 응원하는 팀 없이 한 시즌의 전 경기(2023-2024시즌 기준 총 126경기)를 보고 있습니다.(행사나 약속 때문에 시간을 못 맞추면 하이라이트라도!) 특정 국가/팀/선수를 응원하지 않은 채 TV 중계를 보거나 경기장을 찾는 게 가능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배구란 스포츠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아니, 여자배구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남자배구는.. 그것도 배구가 분명하긴 하지만, 저랑은 좀 안 맞더라고요. 이 글에서 말하는 모든 배구는 여자배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배구의 기본 규칙으로 인한 특징입니다. 정교한 토스와 강력한 스파이크, 철벽같은 블로킹 등 손으로 공을 다루는 기술을 떠올리게 되지만, 의외로 배구는 신체 모든 부위를 사용해도 되는 스포츠입니다. 실제로 발을 이용해 바닥에 떨어져 가는 공을 살리는 기술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을 잡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규칙은 아주 강력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토스의 경우에는 공이 손바닥에 닿는 것만으로도 ‘캐치Catch’ 반칙에 해당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세 번의 터치 기회 안에 상대방 코트로 공을 넘겨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배구공은 잠시의 멈춤도 없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끝없이 움직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연결입니다. 이 연결은 축구와 농구의 패스와는 전혀 다릅니다. 패스는 공이 상대방 진영의 목표 지점(골대)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전략 중 일부에 해당할 뿐이지만 배구에는 오직 연결만 있습니다. 혼자 적진을 휘젓고 다니는 드리블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팀에 주어진 세 번의 연결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상대방이 넘겨주는 공을 잘 받는 일, 두 번째는 공격 역할을 맡은 사람에게 공을 잘 보내는 일, 세 번째는 상대방이 받기 힘들도록 코트 위로 공을 넘기는 일입니다. 순서대로 리시브, 토스, 스파이크가 대표적인 액션입니다. 경기장에 있는 6명의 선수는 이 세 번의 연결을 매끄럽고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혼자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야구에서 투수 혼자 압도적인 피칭으로 경기를 지배하거나 축구에서 손흥민 같은 선수가 수십 미터를 혼자 달려서 골을 터트리는 것 같은 원맨쇼가 배구에는 없습니다. 물론 김연경 선수처럼 아예 다른 차원의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혼자 배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정도가 다른 종목에 덜한 편입니다. 4대 구기종목 모두 팀 스포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팀이 중요한 운동이 바로 배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잘 받고 잘 올리고 잘 때리는 환상의 연결,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다른 스포츠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배구의 첫 번째 매력입니다.